-
모든 일에 형식과 내용이 있는 것처럼 '관계'에도 형식과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관계를 꿈꾸지만 실제 부딪는 현실에선 그 둘이 어긋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형식은 친구인데 어쩌다 만나는 것조차 불편한 만남, 형식은 부모와 자식인데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는 사이도 있지요. 또한 형식은 부부인데 그 안의 내용은 모래알처럼 삭막하기만 한 관계 등이 다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서로 간에 다툼이 발생하거나 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도 그와 같은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관계가 늘 아름다울 수는 없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3.28 17:30
-
보통은 한 나라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삽니다. 미국처럼 민족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경우도 많지요. 한 나라의 인구 중 최대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 85%이상일 때 '단일민족 국가'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그런 국가는 흔치 않습니다. 약육강식의 역사에서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여러 민족이 이합집산을 통해 섞여왔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의 비율이 무려 96%에 달합니다.백의민족이나 한민족은 우리의 그 단일한 순수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하지만 거기엔 분명한 명암이 존재합니다. 우리를 강조한다는 것은 우리와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3.14 17:21
-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입원시켜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특수 병원을 호스피스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호스피스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본 의사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건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못해준 것이라고 합니다.사랑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꺼내놓지 못하고 감정을 전하지 못한 것을 삶의 마지막에서야 그 무엇보다 후회한다는 얘기가 가슴에 콕 박혔습니다.석인성시(惜吝成屎) 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아낄 석, 아낄 린,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2.29 10:52
-
보톡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인 보톨리눔을 주성분으로 하는 의약품입니다. 보톨리눔 독소를 체내에 주입하면 신경말단에서 근육의 수축을 억제함으로써 원하는 부위의 근육을 마비시킵니다. 그를 통해 주름진 피부를 팽팽하게 돌려놓는 마법 같은 미용술이 가능해진 것이지요.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보톡스를 시술했을 때의 변화사례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보톡스를 맞아 미간과 입 꼬리를 더 이상 찡그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우울증 지수가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합니다.어둡고 침울한 표정이 사라지고 한층 밝게 보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긍정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2.15 11:29
-
임영웅 콘서트에 다녀온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훈훈하게 대접받은 느낌'이라고 합니다.콘서트장의 모든 좌석에는 어김없이 푹신한 방석을 비치하여 장시간 공연을 지켜보는 어르신들의 피로를 따뜻하게 녹여 준다지요. 지난 서울 콘서트장에서도 1만5천장의 방석이 관객들을 맞았답니다.어느 날 여자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선 어머니 팬들을 본 임영웅이 추가로 간이화장실을 더 설치하도록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또한 추운 날씨에 콘서트 장 밖에서 공연이 끝나면 부모님을 모셔가려고 기다리는 자식들을 위한 대기 장소까지 따로 마련해 둔다는 이야기들에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1.31 16:41
-
얼마 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당일 새벽에 준비된 약과 물을 마신 후 장을 비워 냈습니다. 한 시간 동안 1.4L나 되는 물을 꾸역꾸역 마시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검사를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그렇게 장 속을 비워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어두운 감정들도 이렇게 비워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노라면 분노, 시기, 원망, 슬픔 따위의 쓰라린 상처들이 쌓여갑니다. 그 오래 묵은 감정들을 말끔히 비워낼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소통은 즐거워지고 타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4.01.13 17:52
-
'빛나는 성공과 값진 결과를 얻기 위해선 고난과 시련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글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진주조개'입니다.여린 속살 안에 거친 모래 한 알을 품고 오랜 세월 고통을 견뎌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진주알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지요.하지만 저는 그 얘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이야기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입장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진주가 빚어진다는 것은 조개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 하지만 진주알이라는 빛나는 결과물을 서술할 때면 갑자기 사람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2.30 19:21
-
손의 지문은 왜 있는 걸까요? 오랫동안 사람들은 물체를 잡을 때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용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문이 없을 때 오히려 마찰력은 더 커진다는 게 실험으로 확인됐지요.과학자들이 밝혀낸 지문의 용도는 '촉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수많은 동물들 중에 지문을 가진 건 영장류와 코알라뿐입니다. 그런데 코알라는 왜 지문이 있을까요? 그 동물은 유칼립투스 잎만을 먹고 사는데, 700여 종이나 되는 그 잎의 대부분은 독성이 아주 강하며 독성이 약한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2.14 13:47
-
미국에서 오랜 이민생활을 하다 귀국하신 분과 백반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뜨끈한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담그며 그가 말했습니다."미국에 있을 땐 말야, 끼니때가 되어도 그 시간이 전혀 기다려지질 않더라구. 맨날 비슷한 빵에 고기쪼가리, 샐러드나 먹다보니..."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여행을 다녀도 마찬가지였어. 차를 몰고 한참을 달리다 만나는 가게에서도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운 핫도그 정도밖에 없으니, 여행의 기대나 설레임조차 없어지더라고."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찌개 국물을 연신 입에 넣으며 "이런 게 너무 그리웠어" 라고 말하는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1.30 13:28
-
현재 세계 최고령자는 116세인 스페인의 마리아 브라냐스 할머니 입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한일합방도 되기 전인 1907년에 태어났지요.그녀는 8살에 사고로 잃은 한쪽 청력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병도 없이 여전히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네 살 때의 일을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도 또렷하고요.브라냐스 할머니가 장수 비결로 꼽는 것은 가족·친구·자연과의 융화, 평온함, 정서적 안정, 긍정적 마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며 이렇게 말한답니다. “독이 되는 사람들은 멀리 하세요.”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1.15 12:56
-
리처드 파인만은 20세기 양자역학 연구의 대표 주자로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식사 후엔 항상 쵸콜릿아이스크림만을 디저트로 먹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한 동료가 그 이유를 궁금해 하며 물었습니다. "다양하고 맛있는 수많은 종류의 후식들이 있음에도 왜 한 가지 디저트만을 고수하는 겁니까?"그러자 파인만이 말했습니다."살면서 결정해야 할 일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한 겁니다."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요. 내가 일할 회사나 배우자의 선택과 같은 큰 결정뿐만이 아니라,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짬뽕 중 무엇을 먹을까?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1.01 11:06
-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은 한국 불교의 거목이었습니다. 청담이 열 살이나 많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 나'하고 하대를 하며 아무런 허물이 없었습니다.어느 날 청담의 제자가 스승에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성철스님은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그러자 청담은 제자를 나무랐습니다."성철스님은 한국불교의 보물이다. 내가 열 살 많지만 불교는 성철이 열배나 잘 안다. 못난 생각일랑 버리거라."그는 나중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성철과 팔만대장경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성철을 택하겠다."그런 청담스님에 대해 생전에 성철스님은 종종 이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10.15 09:15
-
코흘리개 어린 시절. 학교 담벼락 끝엔 달고나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하교 길의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면 아저씨는 찌그러진 양은 국자에 정사각형의 하얀 보석 한 조각을 넣고 연탄불에 올렸지요. 하얗게 녹아 거품이 이는 보석에 마법의 소다 가루를 조금 섞으면 금새 크림처럼 부풀어 완성되던 달달한 달고나. 침 꼴깍 삼키며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에, 찌그러진 국자 속 황금빛 달고나는 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단것이 귀하던 시절, 동심을 유혹하던 '지상 최고의 간식' 달고나... 포도당 덩어리인 달고나는 '설탕보다 달구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9.27 14:02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영화에는 무슈 구스타브 라는 완숙한 능력을 가진 지배인이 나옵니다. 다양한 종류의 상류층 고객들이 그 호텔을 찾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있기 때문이었죠. 직원들 앞에서 그는 고압적인 상류층 고객의 응대 요령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무례함은 그저 두려움의 표출 일 뿐입니다. 원하는 걸 못 가질까봐..."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사랑받으면 꽃봉오리처럼 마음이 활짝 열리죠."사람은 늘 타인에 대해 일정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아챌까봐, 존중받지 못할까봐, 내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9.14 10:44
-
"괜찮아?..."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픈 데는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어려운 일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상처받은 일은 없는지 걱정하며 살피곤 합니다. 특히 부모, 형제,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의 안부는 나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기에 자주 체크하고 확인하며 주의를 기울입니다.그런데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9.01 02:35
-
영화배우를 검색하면 그에 대한 관련 정보 중에 꼭 등장하는 것이 '필모그래피'입니다. 그 배우가 어떤 영화들에 출연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부분이죠.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흥행성과 연기력도 가늠해 보게 됩니다.하지만 그건 배우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친구'라는 이름의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습니다.누군가가 가까이 사귀는 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친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입니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8.12 19:41
-
손흥민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드문 선수입니다. 공격수가 양발을 모두 사용하면 상대 골키퍼나 수비수는 어떤 동작에서 슛이 나올지 예측이 되지 않아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것이 손흥민을 월드클래스로 거듭나게 한 비결중의 하나였지요. 그런데 오른발잡이인 그는 어떻게 양발잡이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 손정웅님이 이끌었던 철저한 훈련의 산물이었습니다.오른발잡이라는 타고난 습성을 깨뜨리기 위해 슈팅연습은 물론이거니와 발을 씻거나 양말을 신을 때조차 왼발부터 하도록 가르쳤답니다. 그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손흥민은 왼발과 오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7.30 14:57
-
연예인이자 공연제작자인 송승환은 1997년 제작한 공연 '난타'로 글로벌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5년 전부터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을 앓아 현재는 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시각을 점점 잃어가던 시점에 그는 한 배우와 이런 말을 나누었답니다."눈이 잘 안 보이니까 뿌예서 다 이쁘고 멋있어 보여."사실과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을 보게 될까봐 눈에 불을 켜고, 모든 것을 더 정확히 파악하는 것만을 중시했던 내게 송승환의 말은 신선함을 넘어 충격이었습니다.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방을 선명한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뿌옇게 필터링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7.19 16:51
-
며칠 전 저희 둘째 아이가 군에서 전역을 했습니다. 취사병으로 복무했는데 장병 200명 정도의 식사를 매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름의 어려움과 고충도 있었지만 취사장의 일을 도와주시는 60대의 민간인 여성 한분이 계셔서 많은 의지가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아이의 전역을 앞두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그분께 손 글씨로 감사편지를 한통 써서 전했습니다. 편지의 말미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6.26 18:34
-
함께 숲길을 걷다가 그루터기에 앉아 다리쉼을 하던 중 친구가 불쑥 물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아?" 둘 다 침엽수라는 정도만 알뿐, 엇비슷하게 생긴 그 둘을 '도시촌놈'인 나로선 알 턱이 없었지요.친구가 말했습니다. "길고 뾰족한 잎을 보면 알 수 있어. 두개씩 붙은 건 소나무 잎이고 다섯 개씩 붙어 있는 건 잣나무 잎이야." 숲에 떨어진 잎들을 주워서 살펴보며 친구의 설명이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한 번도 눈여겨 본적 없는 두 나무의 차이를 선명하게 느끼며 푸른 숲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관심과
데스크편지
김덕호 기자
2023.06.12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