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 허송세월을 황금기로 바꿔준 감사노트

■ 감사나눔페스티벌 공모전 최우수작 

철부지 반항아가 감사맨으로 변하기까지
21개월 허송세월을 황금기로 바꿔준 감사노트

 

김도현 일병
39사단 독수리연대

지난 11년 동안 내 주변에는 금발머리, 푸른 눈동자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한국인의 정체성도 서서히 사라졌고 미국문화에 완전히 흡수되고 적응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미국인이라 착각하게 되었고, 2014년 11월 찾아온 내 삶의 폭풍에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좌절감, 우울증, 분노,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 찼고, 그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1잔이 10잔이 되어,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간이 화장실 변기 앞에서 구토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이 삶의 폭풍 중심에는 ‘군 입대’가 있었다. 부모님 권유로 감행한 군입대. 두려움에 떨며 건너온 한국. 그렇게 나의 입대일이 밝았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내 생활은 밝지만은 않았다. 언어문제로 지적도 많이 받았고, 훈련성적도 좋지 못했다. 자신감이 없으니 말도 적어지고, 간부님들과 조교의 눈에 안 띄도록 숨기 바빴다. 하지만 신교대 수료 후 117연대로 전입온 뒤로 내가 느리지만 확실히 밝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변화에 많은 요소들이 작용했겠지만, 군에서 실시하고 있는 감사나눔운동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전입 초, 아직까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나는 감사나눔노트를 왜 써야 하며, 그것을 왜 발표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귀찮음으로 이어져 노트를 작성하지 않아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선임들과 연대의 분위기는 벌써 감사나눔운동이 생활화되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며 올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서서히 적응을 할 수 있었다. 선임들은 부족한 내게 잘 따라 주어서 고맙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분대원들은 미국에서 용병이 왔다고 좋아했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던 나에게 걸 그룹과 유행어, 댄스까지 알려주었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리고 선임 중 한 명은 영어를 잊어버리게 될까봐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나의 첫 취약시기 투입 때였다. 취약시기 투입 때는 모든 분대원들이 더 진지하고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작전에 대하여 모든 힘을 쏟아야만 했고 서로에게서 진지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박격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내가 기초 박격포 재원도 제대로 못 외우고 있었는데, 분대장님이 근무를 같이 서면서 ‘초기에는 모두 어려워했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혼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생활관에서 감사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상승된 자신감으로 박격포 공부는 물론, 한글공부도 꾸준히 했다. 4월에 진행된 공용화기 집체교육에서 개인1등을 하게 되었던 이유도 감사나눔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군 입대 전 원망하기까지 했던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일주일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감사나눔노트를 작성하다보니, 부모님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하고 나를 아껴주시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5년이나 기러기 생활을 하신 아버지와 낯선 타지에서 누나와 나만을 바라보며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그 동안의 나의 행동이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감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창시절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내가 감사나눔운동으로 인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예전에는 모든 일에 앞서,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행동을 하다 보니 쉽게 좌절하고 포기를 했었는데, 감사나눔운동을 통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다. 작년 12월, 훈련 중 발목 인대가 늘어났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고 하필이면 왜 내가 다쳐야 했는지 생각했다. 이제 겨우 이등병인데 다쳐서 눈치가 보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매일 감사나눔노트를 쓰면서 더 큰 부상을 당하지 않고 인대만 늘어난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매일 의무대로 찾아와주는 선임들의 모습에 감동과 큰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다.

 입대 전 낭비라고만 생각되던 21개월은 어느새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배울 수 있었고, 내 주변에 있던 미국인 친구들은 돈을 주고도 겪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또한 군대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입대 후 소중한 추억들도 없었을 것이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한 군대는 디딤돌이 되었고,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내 모습도 감사나눔운동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감사나눔운동으로 인해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고 부족한 한국어로 이 글을 제출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감사나눔운동이 생활화된 충무 독수리연대에서 감사함을 배울 수 있었고, 이것을 계기로 더 좋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군생활 동안 감사를 나누며 이러한 영향을 더 많은 전우에게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도현 일병
39사단 독수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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