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당의 소금 이야기

백옥같은 도인 치아의 비밀 ‘소금 양치’
우이당의 소금 이야기


“기왕에 내 식을 물었으니 가르쳐줌세. 우리 몸에 평생 길러 써야 하는 게 두 가진데 뭔지 아나?”
“….”
“치아와 눈이지…. 조선의 선비들은 평생 공부를 위해 치아와 눈 양생에 각별히 신경 썼는데 이게 요즘말로 아주 과학적이지. 금생수 수생목의 선순환 양생이론이거든. 소금이 왜 소금인가? 금쪽처럼 귀하게 쓰라고 해서 소금이지. 소금으로 우리 몸에 수성(水性)인 이를 북돋고 이 물로 다시 눈 목(木)을 북돋우니 살아평생 밥을 먹어 몸을 지키고 눈을 밝혀 글을 읽을 수 있는 거라네.”

사람은 저마다 살면서 여러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우이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생을 통틀어 남는 게 있다면 저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스승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꼭 모든 분과 직접 스승의 연을 맺은 건 아니지만 그 분들이 보여준 말과 행동, 생각의 줄기가 늘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아 저를 지탱하는 기둥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스승의 은혜는 평생 공부의 자세는 물론 평생 눈과 치아를 지키게 해주셨단 점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20대 초엽의 일입니다. 당시 역학에 심취해 있던 저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실력자와 한판 겨룰 기세로 찾아다녔습니다. 여물지 못한 치기에 우쭐함이 보태져 온 우주의 진리는 오로지 나만 관통한 줄 착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계룡산 줄기에 사숙을 갖고 계셨던 한 분 스승님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80대 초반이셨던 스승에게 싸울 듯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곤 요건 몰랐지 하는 심정으로 의기양양하게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5분이 흘렀습니다. 10분이 지났습니다. 노려보던 제 눈에 힘이 빠지는 것과는 반대로 스승의 눈빛은 초연함으로 빛났습니다. 다리마저 후들거린단 느낌이 전해져 마음속으로 ‘침착해야지. 침착해야지’ 다짐을 하는데 스승께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한마디 하셨습니다.

“좀… 비켜설 순 없겠나?”

그제서야 제가 늙은 노스승의 앞을 떡 가로막고 서 있었단 사실을 알았습니다. 일견 맥이 빠지고 부끄러워 후다닥 자릴 비켜서고는 드디어 무슨 말씀이 나오려나 기다리는데 감감 무소식! 또다시 한 20여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차츰차츰 부아가 치밀고 당혹감이 엄습했습니다.

‘이 양반이 혹… 가짜가 아닐까?’

저도 모르게 의심이 커가며 진퇴를 고민하는데 물끄러미 들녘을 응시하던 스승께서 지나치듯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 눈으로… 평생 공부는 어렵지 아마….”

그러고 보니 신문을 들고 계신 노스승의 눈은 맑다 못해 별처럼 초롱거리고 제 눈 위에는 두꺼운 안경이 걸쳐져 있었습니다. 순간 한없이 초라해지며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20년 공부와 80년 공부의 차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성장기를 제외한다면 그마저 책다운 책을 읽은 건 고작 서너 해! 반면 네 살부터 한학을 시작해 80평생에 이른 노부! 짧은 정적을 깬 건 사력을 다한 오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게… 전부신가?”

다시 10여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쉬고 가시게…. 젊어선 제 때에 밥농사를 짓는 게 중요하네….”

휘적휘적 옷자락을 날리며 앞서가시는 노인이 처음으로 거대 한 스승으로 보였습니다.

참담함과 부끄럼으로 한잠도 이루지 못한 저는 새벽 몰래 빠져나갈 요량으로 방문을 나서는데 마당 우물가 한 켠에서 노부 한 분이 웅크리고 앉아 세안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보니 노스승께서 입에 손가락을 넣어 이곳저곳을 문지르고 하얀 양칫물을 뱉어내 눈가에 퍼담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드디어 허명에 부풀려진 가짜 스승의 마술이거나 비기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다가가 자세히 보려 했습니다. 제가 작은 눈을 크게 치켜뜨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걸 아셨는지 스승께서 퉁명스레 한마디 하셨습니다.

“얼굴 닦는 걸 처음 보나?” 

“그런… 식은 처음입니다.”

“자네 얼굴 자네가 닦고 내 얼굴 내가 닦는데…. 그런 식이라니…?”

“(제가 보니) 뭘 입에 넣으셨다 눈으로 넣으시던데…?”

“그게… 마술처럼 보이나?”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소리도 못 내고 “…(네)!” 하는데 노부께서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니 놀랍게도 치아가 백옥을 깎아 늘어선 모양에 맑고 투명함 그 자체였습니다.

‘도인이라더니… 허명은 아니구나….’

저도 모르게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기왕에 내 식을 물었으니 가르쳐줌세. 우리 몸에 평생 길러 써야 하는 게 두 가진데 뭔지 아나?”

“….”

“치아와 눈이지…. 조선의 선비들은 평생 공부를 위해 치아와 눈 양생에 각별히 신경 썼는데 이게 요즘 말로 아주 과학적이지. 금생수 수생목의 선순환 양생이론이거든. 소금이 왜 소금인가? 금쪽처럼 귀하게 쓰라고 해서 소금이지. 소금으로 우리 몸에 수성(水性)인 이를 북돋고 이 물로 다시 눈 목(木)을 북돋우니 살아평생 밥을 먹어 몸을 지키고 눈을 밝혀 글을 읽을 수 있는 거라네.”

“그래도 위생적으로…?”

“무엇이 위생인가? 내 몸을 지키는 위(衛)생인가, 위생 이론에 맞춰 사는 위(爲)생인가?”

“….”

“그런 자네 눈은 왜 그렇고, 그런 자네 치아는 왜 그 모양인가?”

“그래도 과학적으로…?”

“과학이란 당대의 시야를 반영한 진행형의 해석틀일 뿐 그 자체가 완벽한 건 아니네. 특히나 서양과학은 물질과 현상에 기초한 학문이다보니 치아를 닦는 건 알아도 기르는 이치를 모르고 눈에 약을 넣는 건 알아도 밥을 주는 이치를 모르지.”

오십을 넘긴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이당은 사전이나 옥편의 작은 글씨까지도 안경 없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치아를 보곤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십니다. 이 모두가 젊은 날 짧게 조우한 스승의 덕이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이당 김명식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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