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여사의 고백 “사랑은 상대를 성장시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내 안의 덫, 내면 아이를 풀어주었습니다”
이혜숙 여사의 고백  “사랑은 상대를 성장시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가을이 다가왔을 때, 자신을 돌아본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소용돌이치며 살아온 세월에서 자신이 서 있는 시점을 한번쯤 확인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과연 나는 내 인생을 얼마나 정리하면서 살아왔던가?

돌아보면,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자동차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능사인 양 살았던 내 모습이, 스크린처럼 비추어져 씁쓸하기만 하다. 무엇을 위한 전진이었을까? 세상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추구하는, 성공이란 걸 얻기 위해 그리도 질퍽거리며 달렸단 말인가? 내 이름 석 자를 지구 위 어딘가에 휘날리고, 그 누군가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달콤한 꿀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었냐는 말이다.

어린 시절 막대사탕 하나에 목을 매듯, 언니가 엄마로부터 받는 따뜻한 미소에 무척이나 목마른 적이 있었다. 글짓기 상과 그림 상을 타 가지고 온 언니가, “엄마, 나 상 탔어” 하는 한 마디에 활짝 웃으며 언니를 쓰다듬어주던 엄마의 그 환한 모습이, 나에겐 얼마나 뼈아픈 추억이 되어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나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다는, 그 인정어린 한 조각의 웃음이, 절절한 갈망이 되어 나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나 동료의 칭찬 한 마디에 텀벙텀벙 튀어나와 흙탕물을 만들곤 했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엽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인정받는다는 것, 나만이 그리도 목 메이는 사안일까?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 이 괴짜 같은 놈에게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에게만 칭찬을 들어도 우쭐하고, 두세 사람이 알아주면 벌써 목에 힘부터 들어가는 게 보통 사람의 모습 아닌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린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쳐주는 북에 울고 웃어야 하는 걸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내 경우는, ‘감정 연습’이라는 책을 통해, 내 안에 내가 걸려 있는 덫을 찾아서 그 내면 아이를 풀어주고 난 뒤로부터는, 그 괴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불신과 학대의 덫’, ‘정서적 박탈의 덫’, ‘종속과 복종의 덫’, ‘의존의 덫’에 걸려 있는 나를 보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곤 생각난 것을 자세히 쪽지에 적었다.

그 쪽지를 보면서, 그 아이의 억울함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가장 부드러운 말로, 눈물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그 아이를 충분히 달래주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이 아닌 그 아이가 납득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난 후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었다.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었다. 내 안에 그런 아이가 살고 있었다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체험이었다. 그날 이후,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덫에서 풀려나, 진짜 숨을 쉬면서 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가 내 모습을 바라보고 멈출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어린 아이와 같던 나의 심정 중 또 하나는,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온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열심히 도와주면서 즐거워하곤 했다. 근데 문제는, 그런 나를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얼토당토않은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땐 왜 그렇게도 서운하고 억울하게까지 느꼈는지!

M. 스카펫 박사는,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많은 신경증 환자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성장하기를 멈춘 데서 문제가 생겼다고 보았다. 그들을 정상적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하려고 노력했다. 진정 환자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생을 다 바쳤던 것이다. 그의 말은 나에겐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분의 책을 대하기 전까지, ‘사랑이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 필요를 채워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상대방을 성장시키는 것이라니!’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문제를 놓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난쟁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자연스럽다거나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 그 모습.’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그가 “난 괜찮아, 이대로가 좋아. 난 절대 지금의 모습을 바꾸지 않을 거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내버려둘 것인가? 정말 꿀밤이라도 한 대 먹여서 그를 자라도록 하고 싶지 않은가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름 아닌 내 모습이 아닌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만 움직여 보려고 애쓰는 어린 아이 모습. 그 모습을 시종일관 바라보시고는, 안타까워하며 마음 졸이시는 분이 계셨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곁에 계셨던 것이다.

나이가 40이 넘어서부터는 인생 공부가 점차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지는 법을 배워가는 공부,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는 공부,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아가는 공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공부, 다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공부, 세상을 보는 법을 아는 공부,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해 보는 공부 등등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가 너무 많아 행복하다. 또 그 분야의 스승님들이 있어서 더욱 고맙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처럼, 세속 현자에게 이끌리어 곁길로도 빠지고, 곤고함과 사자의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지만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가 있기에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것처럼, 이젠 나도 그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고 싶다.

용기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나의 친구들과 함께 멋진 성숙의 길로 말이다.

※ 이혜숙 님은 인생 공부를 가장 좋아하며 현재 포이에마예수교회 집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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