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 기자의 ‘베끼고, 느끼고!’ ⑧

김서정 기자의 ‘베끼고, 느끼고!’ ⑧

나는, 우리는, 세상은 도대체 뭘까?

베낀 글

뉴욕 브롱크스(Bronx) 구에 있는 동물원에는 영장류 동물만 따로 넣어둔 큰 건물이 하나 있다. 거기서는 온갖 대륙에서 온 침팬지, 고릴라, 긴팔원숭이와 그 밖에 여러 종의 원숭이들을 좋은 조건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건물 끝에는 특이하게도 창살이 굳게 쳐진 우리 한 개가 동떨어져 있다. 가까이 가 보면 팻말이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영장류 동물’이라고 쓰여 있다. 창살 안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게 된다.

또 다른 팻말에는 인간이 세상에 알려진 다른 모든 종과 달리 여러 종의 생물들을 지구에서 소멸시켜버렸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순간 우리는 관찰자에서(우리 자신의) 피관찰자로 된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앎의 나무’(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공저, 갈무리)에서

느낀 글

밤거리가 차가웠지만 잠시 걸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치킨이 몹시 먹고 싶었다. 그래서 한 치킨집에 들어가 물었다. “반 마리도 팝니까?” “아니오”라는 대답이 차갑게 되돌아왔다. 그 대답이 아쉬우면서도 반가웠다. 아쉽다는 것은 몸은 치킨을 원하는데 그것을 못 먹어서 그런 것이고, 반갑다는 것은 안 먹으니 일단 오늘 살 찔 염려는 줄었다는 것이다.

오래전 나는 85킬로그램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등산과 식사량 조절로 살을 65킬로그램까지 감량했다. 단기간은 아니고 2년 걸렸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살이 붙기 시작했다. 8년의 요요 기간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과거로 돌아가려는지 운동도 거의 안 하고(두세 시간 걸으면 발목이 아프다. 전에 몇 번 다쳤기에) 먹기만 한다. 70킬로그램을 가볍게 넘었고, 앞으로 걱정이다. 음주와 식사 조절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살을 뺄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아도, 입과 손은 멈추지 않는다. 난감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치킨을 포기하고 또 걸었다. 갑자기 미칠 듯한 질문이 내게 쏟아졌다.

“도대체 뭔가? 온 이유도, 사는 이유도 모른 채 오늘 또 하루가 간다는 말인가? 내 몸과 거기서 비롯되는 마음으로 뭘 더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뭔가가 우주를 만들었다? 우주는 그냥 우연히 생겼다? 그런 거 집어치우고 잘 살다가 가면 된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구의 구성 요소들을 해체하고 조합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리저리 만든 것들을 많이 소유하는(물질과 권력) 그런 게 성공이고 잘 사는 삶인가? 그렇게 긴 세월에 걸쳐 지구를 새롭게 재편해놓았는데, 어느 순간 소멸할 수 있는 게 지구 아닌가? 그렇다면 그 과정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매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이런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 상황은 대개 그날 일이 잘 안 풀렸거나 억지로 뭐를 해야 했거나 미래가 갑자기 캄캄해 보일 때 더 심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나는 이러한 질문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하지 않는 인간은 멈추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