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원형의 아내 이현주가 추억하는 두 아버지

생활감사

“만나지 못한 분도, 함께한 분도 모두 내 아버지”
조각가 이원형의 아내 이현주가 추억하는 두 아버지

남편의 아버지는 왜 남편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졌을까?

아들에게는 엄하고
딸들에게는 천사같으셨던
나의 아버지

모두 그립습니다.

#  남편의 아버지

멕시코를 참 좋아한다.

토마토라는 정말 맛있는 과일이 이곳에 지천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토마토와는 맛과 질이 다르다.

어릴 적 아버지는 그를 안고 집 뒤뜰, 토마토 밭에 자주 가시곤 하셨다. 사진을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의 얼굴이, 향긋한 토마토 향에 아버지 냄새가 배어나와 그를 살아가게 한다.

아버지를 가슴에 품게 한다. 아버지는 스탁 브로커라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조금 생소한 직업을 가지고 계셨다.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체신부에 다니던 어머니를 전차에서 첫눈에 반한 아버지는 몇 년을 쫓아다녀 결국 공주보다 애지중지 키워주신 오빠의 허락을 받아내었고, 어머니와 결혼 후 오빠의 권유로 우체국을 경영하셨다.

그 당시 어머니의,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오빠는 체신대학의 교수로 계셨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체신부 국장도 하신 분이라고 들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막내인 어머니는 오빠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궂은일 한번 안 해 보시고 곱게 자라셨다.

서울여상 재학 당시 수영과 스케이트반 활동 등을 하였고 체신부에서도 신여성의 선두 주자였던 그런 어머니에게 식구가 많고 같은 집에 사는, 동서들이 위로 셋이나 줄줄이 있는 시집살이는 녹녹치 않았다.

구십이 넘으시고도 우리 어머니 가끔 기억이 나시는지 말씀하셨었다.

“그때는 화장실 가서야 좀 쉴 수 있었어. 막내라고 어찌나 들들 볶아 대는지….”

그 때문이었을까?

우체국 경영을 그만두신 아버지는 두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이북으로 올라가 정어리에서 기름을 짜는 공장을 차리셨고 그곳에서 작은 누나가 태어났다.

우리 시아버님은 사업에는 소질이 없으신 분이셨을까? 아님 그곳에서 접하셨을 그 당시 사회 밑바닥 계층의 고달픈 삶을 직접 보고 분노했던, 깨어있는 지식인이라면 홀딱 반할 마르크스 레닌주의 때문이셨을까.

휴전선이 그어지기 바로 직전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셨다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 누구에게도 그때의 일을 들을 길이 없다. 남쪽으로 다시 내려오신 이후에 그와 막내누나가 태어났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지는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어린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엔가 떠밀려 간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 나의 아버지

“맨날 맨날 추우면 좋겠어….”

어릴 적 나는 겨울이 참 좋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하얀 눈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되면, 아빠가 집에서 우리와 놀아주고 탕수육도 해주고, 라면도 튀겨서 설탕에 무쳐주고, 누룽지도 튀겨주고, 좀 지겹기는 했지만 무릎에 앉혀놓고 족보도 가르쳐 주고…. 그래서 좋았다.

애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에서 협력업체 기념품 매장 총괄 업무를 하셨던 아버지는 오프 시즌이 되면 간간히 다른 일을 하신 것 같지만 집에서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었다.

막내동생을 낳은 다음날에도 일을 나갔던 엄마도 그 즈음에는 아빠를 도와 기념품 가게를 하나 맡아 일을 하고 계셨다. 엄마 아빠를 늘 볼 수 있으니 나는 그저 겨울이 좋을 뿐이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한자를 배웠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늦게 입학했지만 중고등 학교를 일등으로 합격할 정도로 똘똘한 아이였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공고 전기과에 입학한 아버지는 특기를 살려 군대도 공군에 지원해 오산 비행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빠, 비행기 프로펠러 닦는 게 임무였지?”

아빠 놀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반색을 하신다.

“아빠가 말해줄게, 정비공이었어. 미군에서 선생이 와 원서로 모두 공부하고 시험도 통과했다. 이 아빠가 정비하던 비행기가 지금은 전시 돼 있어. 레이더 정비가 아빠 특기였거든. 빨간 마후라 영화 알지? 그 영화에 아빠 일 하는 모습도 나와!”

“우리 시어머님은 오산 비행장 만들 때 설계·시공하신 매니어 씨 통역사였는데, 인연이네…. 그치?”

나는 이 세상 모든 아빠가 모두 우리 아빠 같은 줄 알았다. 생리대를 사다 주시고, 예쁜 속옷도 사다 주시고, 엄마와 딸들의 화장품도 늘 사다 주셨다.

생리대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게 나는 더 이상했다. 나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었으므로….

남편과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내가 택한 사람도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왠지 아빠는 나의 선택에 당연히 응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엄마를 여자로 이해하게 되고, 엄마의 고생을 맘속 깊숙이 아파하고,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내 생활이 바빠지며 아빠에게 소홀했었다.

“딸들은 나이 들면 모두 엄마 꺼야. 서운해 하지 마. 아빠.”

아들에겐 무척 엄하셨지만 딸들에겐 천사 같았던 아빠, 엄마가 안 계신 빈자리를 메꾸어 드리진 못하겠지만,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이제 되돌려 드려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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