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내 인생의 히말라야

미국 로스캐롤라이나 주에  훼잇빌이라고 하는 도시가 있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나는 한 교회 목사로 일했다. 그런데 이런 한인 교회마다 소위 ‘왕언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파워는 대단했다.

내가 목회를 했던 교회에도 왕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처음에 내가 이 교회에 부임하고 2년간은 그녀와 관계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은 후 부터는 관계가 최악의 상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교회에서 쫒아내려고 다른 교인들을 충동질하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나를 괴롭혔다.

화해를 해보려고 무던히 애를 써 보았지만 그녀는 그야말로 막가파요 소통이 안되는 벽창호 같은 사람이었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나는 그녀를 위해 감사편지를 써 보기로 했다.

그래도 지난 2년간 서로가 좋은 관계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기에 감사거리를 찾으면 꽤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2시간이나 끙끙 거리며 감사거리를 찾아 써도 50개를 채 넘기기가 힘들었다. 또한 그 감사 내용조차 내가 읽어봐도 별로 감동적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이왕 힘들게 쓰는 거 100가지를 찾아보자’ 하고 시작한 게 내 생애 최초의 100감사가 되었다.

100가지나 되는 감사거리를 찾다보니 참기름을 짜듯이 쥐어 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쥐어짜며 감사거리를 찾다보니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동안 그렇게 밉기만 하고 마치 마녀와도 같았던 그녀가 사실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행했던 모든 못된 짓은 옆으로 제쳐놓고, 오로지 그동안 감사했던 것들과 그녀의 강점만을 눈곱만한 것들까지 모두 찾다보니 그녀는 마녀가 아니라 정말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100감사를 썼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잠든 밤에 집 문틈에 100감사를 쓴 봉투를 꽂아 놓고 마치 수험생이 결과를 기다리듯 그녀의 반응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3일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요일 아침 교회 복도를 향해 걸어오던 그녀는 나와 마주치자 양팔을 치켜든 채 달려왔다.

“내가 목사님을 얼마나 괴롭혔는데 그런 나를 위해 100가지나 되는 감사를 써주시다니! 목사님이 사람이에요?”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서로 끌어안은 채 눈물만 흘렸다.

이것이 바로 100감사의 위대한 힘이다. 내 시각이 바뀌고 나니 100감사에 촉촉한 진정성이 담기고 그것이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후로 나는 힘든 사람을 만날 때 마다 100감사로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 대상은 내 가족이었고 교인들 이었으며 동료 목회자들 이었다.

지금 나는 내 삶의 최고 가치를 감사로 정하고 살고 있다. 등산가 엄홍길 대장은 자기 삶의 최고의 가치를 히말라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비록 비웃을지 몰라도  목숨을 걸고 수도 없이 그 높은 히말라야를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법이다.

나는 감사를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매일 감사를 쓰고 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부디 이 가치가 다른 것에 의해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안남웅 행복나눔125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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