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른 아침에 걸려온 전화로 마음이 분주해졌다. 해산을 앞둔 며느리가 산통이 시작되어 병원에 왔다는 아들의 전화였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날씨 탓에 단단히 단도리를 하고 나섰는데 다행히도 구름을 뚫고 자맥질해온 햇살이 서근서근한 바람과 함께 온몸에 와 닿았다.

첫 손녀를 보는 설레임에 해낙낙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을 때 며느리는 이미 몸을 푼 상태였고 아이는 목욕을 마치고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 가족들과 첫 대면을 하려는 찰나였다.

아이를 처음 보는 순간, 내게 아직도 얼룩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앞을 가렸다.

2014년 내게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암담했지만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떠난 뒤 변해버릴 것들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 조금만 더 내게 시간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 중에 제일 맘에 걸리는 것이 딸아이였다.

내가 결혼을 하고 출산했을 때 친정엄마의 산바라지 없이 혼자 그 외로움을 겪어 봤기에 내 딸에겐 뭉근하게 오래 끓인 미역국을 먹여 주며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그 시간을 함께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 또한 내 엄마처럼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에 걸려 명줄을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 울며 매달렸다.

걸핏하면 두통으로 의식을 잃었고 심장이 조여 왔지만 난 그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참아냈다. 눈을 감아도 차마 잊지 못할 그 그리움은 여름 햇살에 내다 널어도 마르지 않아 늘 축축히 젖어 있던 아픔의 시간들이었다.

자꾸 주책없이 눈물을 질금거리고 있을 때 회복실에 있던 며느리가 입원실 방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산통을 겪었는지 며칠 새 눈이 때꾼했다. 수고했다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고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아니요” 하며 생각했던 수위보다 훨씬 높다고 앙세게 대답했다.

그럼 그럼. 성스런 생명 잉태하여 열 달 뱃속에 품었다 여린 빛 따라 뜨거운 물줄기 틀어 산도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으니 괜찮을 리가 있겠니?

그래서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 맘 안다 하지 않더냐.

서분서분 출산의 고통을 말하는 올케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은 잔뜩 겁에 질려 “엄마 나 시집가기 싫어 “하며 콧소리로 응석을 부렸다.

‘겁 먹지 마라. 걱정도 마라. 이젠 엄마가 네 곁에서 너를 지켜줄 테니까.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기다려왔는데 너를 혼자 두고 내가 어떻게 어디를 갈 수 있겠니? 우린 이제 누구보다도 행복해지는 법을 잘 알고 있으니 눈물과 걱정일랑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때 예쁜 공주님은 고른 숨을 내쉬며 배냇짓을 하는지 깜찍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이제 더는 너희들을 위해 엄마의 한숨은 바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힘든 일이 있을 때도 항상 웃으며 견뎌준 너희들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내겐 너무도 소중한 감사의 시간이었음을 전한다.

내 영혼의 뜰에 기어이 꽃을 피워 정원을 만들어 주는 너희들이 있기에 이 행복을 맘껏 누리고 싶다.

오숙경 시인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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