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수 씨 집안의 어머니 추모집, ‘사랑합니다 어머니!’

“효도계약서를 만드시겠다고요? 잠시만요”

진실한 가족애(愛)로 만든 세상의 단 하나뿐인 책
이충수 씨 집안의 어머니 추모집,  ‘사랑합니다 어머니!’

사진 속의 어머니를 더 그리워하고 싶어 ‘사랑합니다 어머니!’ 추모집을 만든 가족들

‘효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라며 부모에 대한 공경과 봉양을 중시하고, 가족 간의 끈끈한 정과 사랑이 넘치던 우리 민족.

하지만 이제는 ‘효도계약서’, ‘불효자방지법’이 거론되는 삭막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뿌리 없이 줄기나 가지가 자라고 잎이 돋을 수 없듯이 사람도 부모라는 뿌리가 없이는 꽃피우고 열매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부모를 향한 그리움은 뿌리에 대한 자연스런 사랑이고 은혜와 헌신에 대한 화답이 된다.

천륜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대.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가슴으로 만들어낸 한 권의 ‘추모집’을 소개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추모집, 어머니의 생(生)을 기록하다

이충수 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88살의 나이로 복수에 물이 차 인위적으로 물을 빼내는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고통보다 늘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돌아보면 어머니의 삶은 감사 그 자체였다.

그는 어머니의 훌륭했던 삶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물려주고 싶었다.

3남 1녀 중 셋째 아들이었던 그는 곧장 형제들에게 ‘추모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형제들 모두 흔쾌히 그의 의견에 동의해주었고 4형제는 물론 손자손녀까지 총 16명의 가족들이 할머니이자 어머니인 신원순 씨를 기억하며 글을 남겼다.

제작 기간만 총 10개월. 편집 디자인을 전공하는 조카가 추모집의 편집을 도맡았다.

그렇게 온 가족의 손을 거쳐 2014년 6월 14일, 세상에 단 한 권뿐인 특별한 책,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탄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던 날 가족들은 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분들을 초청하여 추모제를 열었다. 오신 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추모집을 한 권씩 선물했다.

추모집의 주요 내용과 에피소드를 가족 가운데 몇 명이 대표로 발표했고, 온 가족이 며칠 동안 연습한 곡을 합창으로 불렀다. 참석한 손님들은 “이런 행사는 머리털 나고 처음 본다”며 찬사를 보냈다.

감사, 어머니가 남기고 간 엄청난 유산

추모집 한켠, 어머니의 삐뚤삐뚤하고 맞춤법 틀린 글씨가 등장한다. 무학(無學)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박 속에도 꿋꿋하게 한글을 깨우치셨다.

그렇게 배운 한글로 금전출납부를 작성하셨다. 삐뚤어진 글자 속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어머니를 자식들은 상상했다.

“요양원에 계시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며 항상 깨끗하게 하고 계셨다. (중략) 어머니는 내가 아프다고 찡그리고 있으면 누가 또다시 날 보러 오겠냐며 우리가 가면 먼저 일어나 반기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또 한번 놀랬다.

옆에 아파서 누워 있는 할머니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누가 환자인지 보호자인지 모를 정도다. (중략) 누가 맛있는 과일이나 음식을 가져오면 간병인 아주머니와 간호원 언니들을 다 퍼다 주신다. 이런 마음으로 사셔서 고통이 없으신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첫째 며느리 곽영애 씨가 시어머니를 회상하며 쓴 글을 통해 평소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고자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러한 어머니의 삶은 자식들은 물론 며느리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이씨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정신적 유산 덕분에 형제들끼리 형제애가 넘치고 가정이 화목할 수 있었다”며 어머니를 가리켜 ‘위대한 작은 거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형제들은 어머니 장례식 때 모인 돈을 나누지 않고 가족회비로 만들어 어머니 추모집 발간 및 가족행사 비용으로 사용했다. 이씨네 자녀들은 이러한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끈끈한 형제애와 부모 공경에 대해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 자녀들에게 돈보다 더 큰 힘이 되어줄 유산”이라고 했다.

사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

귀퉁이가 낡아 하얗게 줄이 간 흑백사진 속에 이제는 장성하여 가정을 꾸린 형제들의 장난기 어린 모습이 보인다.

부모님의 회갑연부터 꼬맹이 조카들의 모습들이 지나온 가족의 역사가 되어 한눈에 스친다.

서랍 어딘가 혹은 먼지 묻은 앨범 속 집집마다 흩어져 있는 사진을 한데 모아 추모집에 실었기 때문이다.

형제들의 결혼식 사진, 여행 사진, 자녀들의 유아기 사진 등을 모으고 훑어보는 시간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기억에서 지워진 추억들을 되새기고 공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자녀들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와 조부모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이기도 했다.

추모집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출생 일자와 결혼 날짜 그리고 그들의 자녀 출생일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웬만한 집안의 대소사는 챙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부모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가족의 역사를 기록한 새로운 형태의 족보이기도 했다.

자식과 손주들의 생일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어머니의 수첩

가족,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이씨네 며느리들은 명절 증후군이 없다.

명절 때만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고 영화를 보러 간다. 그들에게 명절이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는 가족파티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여자들만의 특별한 모임이 열린다.

이씨네 며느리 세 명과 이씨의 여동생까지 네 명이 만나 담소를 나누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멀게만 느껴지는 동서지간, 시누이지간을 떠나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형제이자 친구가 생기는 시간이다.

큰 형수의 회갑연 때는 형수의 친정식구들까지 초청해 “훌륭한 형수님을 우리 가문에 시집 보내주신 사돈 어르신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으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형제들의 은혼식 때는 감사패를 제작해 선물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족들의 특별한  이벤트에 며느리들은 이씨 가문의 며느리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웰컴 투 시월드’를 외친다.

“우리 집안에는 명절 증후군이 없어요.”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과 매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는 말 한마디,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슬퍼해주며 참된 행복을 느꼈습니다.

(중략) 우리 식구를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다함께 모이는 모임의 날을 또 기다리게 되요~

이 추모집은 우리 가족들에게 단순히 한 권의 책은 아닌 거죠. 모두가 그럴 거라 믿습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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