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명의 대가족이 모여 감사잔치를 나누는 집

“전립선암도, 위암도, 방광암도 잠시 대기해주세요”
18명의 대가족이 모여 감사잔치를 나누는 집

포스코ICT SOC사업실 박인만 부장의 온 가족 감사

아버지 65세 생신 기념(1998년, 흑백사진)

2011년 5월 한밤중이었다. 박인만 부장은 여동생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오빠, 아버지가 전립선암이래. 이미 전신으로 전이되어 수술도 어렵대.”

날벼락 같은 말을 들은 박인만 부장은 아찔했다. 2009년 아버지를 진단한 의사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혈압, 당뇨, 위장은 모두가 건강하지만 단지 전립선에 조금 문제가 있으니 정밀검사를 받아보세요”라고 말이다. 그 뒤에도 의사의 경고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통증이 너무 심해 급히 병원에 갔고, PSA(전립선특이항원) 수치 1400이라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를 위해 무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좌절감과 절망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박인만과 그들 가족은 시름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가족회의를 열어, 아버지가 맑은 공기 속에 지낼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식단도 채식 위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해내기 어려운 일을 벌였다. 포스코ICT에서 감사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박인만 부장의 결정이었다.

“아버지도 감사일기를 써보세요. 아버지의 일생을 1000가지 감사로 정리하면 손자손녀들에게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받아들여 정성스레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모든 가족들이 명절에 모여 감사를 나누는 감사잔치를 열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암 수치가 1000대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암 세포가 뼈까지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감사실천만으로 몸이 나아졌다니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렇게 박인만 부장의 아버지는 모든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현재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회복 불능의 암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들 가족에게서 아버지의 암은 잠시 물러서 있다.

효녀 가수 현숙은 오랫동안 병환의 부모님을 돌봤다. 무척 고생했을 법한데도 현숙은 고인이 된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빈자리가 너무 크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 것 같다. 떠나고 나면 허망하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 시간을 이어주고 있는 감사, 그 감사를 온 가족이 행복하게 나누고 있는 박인만 부장의 최근 소식을 전한다.

②아버지 79세 생신 기념(2012년)

#1 박인만 부장에게서 직접 듣는 감사근황
“공동체 활동에서 감사의 지속적인 힘을 얻어요”

- 요즘은 감사실천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침대에서 생명에 대한 묵상감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밥 먹을 때마다 하는 3번의 일상의 감사를 빼먹지 않고요. 사무실에서의 대화, 전화통화와 마침, 이메일의 시작과 마침 등 감사는 저의 하루 생활의 호흡으로 들숨과 날숨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전립선암 이후 위암으로 위 절개수술, 방광암으로 방사선 치료 등 지속되는 와병생활 중에서도 평생 살아오신 집에서 가족들과 유머를 나누시며,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만나게 될 하늘 소망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여동생이 찾아와서 일상을 돌봐주는데, 요양 보호사의 도움이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3형제가 역할을 분담하여, 첫째 토요일은 막내가족이, 둘째 셋째 토요일은 저와 제 아내가, 넷째 토요일은 둘째네 가족이 방문하여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주말에 아버지를 방문하면 맵고 짠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아버지의 입맛에 맞추어 요리와 식사 챙겨드리기, 목욕시켜 드리기, 그리고 노래(주로 찬송가) 불러 드리기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주신 업적에 대한 되새김질과 감사와 칭찬 반복해 드리기를 매주일 반복합니다. 가끔씩 가까운 곳으로 햇볕나들이를 하기도 합니다.

 

- 가족들이 모여 감사잔치를 자주 하시는지요? 최근의 감사잔치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온 가족 자손 18명이 모이게 되는 날이면, 부모님을 향한 감사의 사건(일)을 3가지씩 돌아가며 나누는 일이 우리 가족 서로서로에게 큰 힘과 자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설날에 제일 나이 어린 조카 은화(중2)가 감사를 나누던 중 “우리 집이 너무너무 좋은데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온 가족들이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던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 가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가족의 행복 조건이 있다면요?

가족은 경제적 도움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 엄마가 되고, 형제자매가 된다는 혈연관계가 가족의 조건이지만, 가족의 일상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고 나눌 때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가족 구성의 결정은 이러한 경제적 나눔 공동체로서 감사가 일상화하면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 처음 감사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변화가 있다면요? 앞으로의 감사계획도 알려주세요.

처음에는 감사노트, 감사일기, 감사편지를 틈나는 대로 적고, 보내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눈뜨고 생활하고, 입으로 무엇인가 들어갈 때마다 감사를 생각하곤 합니다.

문제가 안 풀릴 때도 감사할 게 없는지 뒤집어 생각해보고, 힘든 일이 생기면 그 일로 일어나게 될 좋은 일들을 상상하고, 미리 감사하는 횟수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혼자 할 때는 자주 잊어버리곤 해서 좋은 공동체(교회 교사 공동체, 학교 사회복지전공 선후배 공동체 등)를 통해서 늘 격려받고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감사생활을 지속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 박인만 부장의 감사일기
“아버지, 감사합니다”

1. 늘 먼저 전화하셔서 “힘들지 않느냐?” 물어보시면서 “열씸히 해라~” 격려해주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행복합니다.

2. 아버지의 성실함을 배우고 익히려고 했지만, 정말 그 맑으신 성품은 샘물 같아 주변에 있기만 해도 늘 행복합니다.

3. 내 나이 어렸을 때는 순진하시고, 성실하게만 보이는 아버지를 카리스마 없다고 불평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아버지의 그 마음이 최고여서 행복합니다.

4. 가정 예배 때마다 아버지의 기도 언어 “고마웁고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그냥그냥 편안해지고, 그 기도 때가 천국 같아서 행복합니다.

5. 힘든 지병 시절, 힘드시니 운전 이제 그만 하시라 해도 “네 엄마 내가 도와야 한다”며 한결 같은 아내 사랑 보여주신 그 사랑이 있어 행복합니다.

#3 박인만 부장과 아버지의 대화
“미안하데이~ 아들아, 고맙다”

나(박인만): 아버지 설사하셨나 봐요?

아버지: 누가 설사했는지 조사해봐야겠다.

나: 그러게요.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아버지: ㅎㅎㅎ

(한참 뒤)

아버지: 이래 살아 뭐하겠노?

나: 세상 사는 게 다 똑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이렇게 살아요. 괜찮아요.

아버지: 내가 와 이래 됐노?

나: 병원 다녀오신 후 많이 드시지 못해서 근력이 없어진 것 같아 어제 제가 좀 많이 드시게 했거든요.

아버지: 미안하데이~ 고맙다.

나: 아버지 저 어렸을 때 똥 많이 쌌잖아요, 동생 자야도, 승이도, 윤이도 똥 싸면 아부지가 다 닦아 주셨잖아요.

아버지: ….

(다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살며시 손을 꼭 잡으며 핸드허그(Hand Hug)한다.)

아버지: 참 좋다.

나: 아부지 등 긁어 드릴까요?

(곤히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동터오는 창문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일은 이동식 변기를 주문해야겠네.’ 아버지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아들의 마음씀씀이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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