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④ “힘들어 죽겠다”는 불평 말버릇 버리던 날

서울아산병원 간호부 ‘한마음 한뜻 페스티벌’ 참관기

“의사와 보호자의 한마디가 나를 키웠다”
수기④ “힘들어 죽겠다”는 불평 말버릇 버리던 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렸던 나에게 엄마의 위암 소식은 청천벽력 같았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 수술 전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술 날, 어린 동생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애써 덤덤한 척했다.

수술 전  “암에 걸려도 치료만 잘 받으면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라고 하시던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 “수술을 잘 마쳤으니 이제 항암 치료만 잘 받으시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치료해봅시다”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머니는 열심히 치료받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완치 판정을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고백했다.

“위암 진단 당시 완치율은 사실 20%였습니다.”

그때 나는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환자와 가족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깨달았다. 그날부터 나의 꿈은 간호사였다.

전문성을 갖춘 당당한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신규 간호사에게는 무사히 하루 업무를 마치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보호자에게 다가가는 일은 언제나 두렵고 긴장됐다. ‘내 부족함이 드러나 나를 신뢰하지 못하면 어쩌지’, ‘말실수라도 해서 보호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보호자가 다가와 어렵게 말을 걸었다.

“저기… 첫 애라 애 엄마가 수유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도와줄 수 있어요?”

다행히 아는 내용이라 서툴지만 자세를 잡아주며 열심히 알려드렸다. 환자가 퇴원하는 날 “조은별 간호사님” 하고 보호자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간호사님 덕분에 잘 배우고 가요. 고마워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2년차였을 때 내가 맡은 환자에게 낙상이라는 안전 사례가 발생하면서 너무나도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때마침 간호부에서는 감사나눔 활동을 한다는데 나에겐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면회 시간이었다. 어느 보호자 분이 “우리 아기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좀처럼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아기를 지켜보며 낙심하고 있었는데 이 문구를 보니 우리 아기에게도 고맙다는 마음이 드네요” 하며 가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인큐베이터 옆에는 ‘힘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문구가 적혀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문구였다.

힘들어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그날 이후 어떤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환자와 보호자에게 감사할 일이 많았다.

먼 길을 달려와 아기를 안아 주셔서 감사했고, 모유를 매일 가져다 주셔서 감사했다. 매일 매일 작은 기적을 보여주는 아기들에게는 간호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줘서 감사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도와주는 수간호사 선생님, 푸념에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선배 간호사님, 어느새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동기들, 이렇게 감사한 사람과 순간이 많은데 한 번도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늘 감사하며 기쁨을 주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소아청소년간호팀 NICU2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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