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회복 자연학교 교장 우이당이 말하는 ‘중병에 이르지 않는 12가지 자연법칙’ ⑮

마 음 건 강   몸 건 강 1

고독 주의보
균형회복 자연학교 교장 우이당이 말하는 ‘중병에 이르지 않는 12가지 자연법칙’ ⑮

삶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
혼자만의 삶이 전부라면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이성과의 교유가
우리 삶을 연장합니다.

“외로움은 삶의 시간을 고통으로 채웁니다. 모든 희망을 태워 버립니다. 삶에 가장 치명적인 병은 암도 바이러스도 아닌 고독입니다.”

 

제10장 이성과 교유하라

1. 모든 생명은 짝을 필요로 한다.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한 시대를 풍미한 가인 송창식의 ‘그대 있음에’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이보다 더 이성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드러낸 말은 없을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노랫말은 다른 어떤 현학적 수사보다도 더 음양의 대대성(待對性)을 드러내는데 적합합니다.

돌아보면 인생은 짝을 향한, 짝을 위한, 짝에 의한 평생의 순례에 다름 아닙니다. 태어나 성장하는 시간 동안 부모에게 길러지는 20여년의 시간을 제외하곤 모두 짝과 지지고 볶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사실 그 안에 모든 게 다 담깁니다.

일도 사랑도 인생도 홀로 이뤄지는 건 없습니다. 그 안에 함께 한 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간들입니다.

혼자만의 스토리라면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건조함 그 자체. 홀로 왜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살아야 합니까?

삶은 함께 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이러저런 얘깃거리가 생겨납니다. 동일한 시간을 나눈 짝이 서로의 주인공입니다. 혼자만의 삶이 전부라면 그 안엔 인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인(人)이란 글자에도 서로 의지한 두 사람이어야 비로소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단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에게 의지합니까? 누가 나에게 의지합니까? 내게 삶의 열의를 북돋는 이는 누굽니까? 나로 인해 또한 북돋워지는 이는 누굽니까? 음양으로 나뉜 짝입니다.

오래하는 부부는 신기할 정도로 아귀가 맞습니다. 마치 성격의 부절을 쪼개 나눠 가진 듯 서로 다릅니다. 그런 탓으로 온전함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성격이나 성향이 비슷한 부부가 마치 좋을 듯하지만 나날이 삶은 단조로워지고 왠지 부족한 무언갈 채울 수 없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이성의 중요성을 말하니 어느 날 한 분이 묻습니다. 온 세상의 성인남녀가 거의 부부로 결합돼 있음에도 왜 행복한 이가 드문가라고.

우문(愚問)에 고민합니다. 정말 혼자라도 충분이 살 수 있는 건 아닐까요? 미래학자들은 가상체험이 현실과 유사해져 이성의 필요성을 잃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때의 체험은 거의 성적 체험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성을 만나는 중요한 이유 중 절대치가 섹스에 있다고 본 것이죠.

섹스? 맞습니다. 이성을 만나면 자연스레 성적 합일에 이르고 섹스 자체가 이성을 당기는 페르몬 역할을 합니다.

그럼 섹스만 채워질 수 있다면 이성의 존재가치는 굳이 비중을 둘만한 여타의 이유가 없어지는 걸까요?

처음의 노래가사로 돌아갑니다. 섹스는 음양의 성징(성적 부호)이 결합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성과의 결합 없이 짝과 공통의 분모를 지니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음양이 서로를 마주보게 이끄는 힘은 섹스가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섹스뿐이라면 섹스력이 감퇴되는 노년엔 모두 서로에게 결별을 고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알 수 없는 어떤 자석 같은 힘이 늘 이성을 향하게 합니다. 그건 바로 상대적 음양이 있어야 존재하는 우주의 복사판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있어야 달이 실체를 드러내듯. 달의 흡인력이 있어야 해가 겨우 모양을 유지하듯. 이성 자체가 실존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실체하는 그대가 없고서야 내가 유사 체험을 한들 그건 꿈에서 이뤄지는 몽정과 같을 뿐입니다.

몽정? 끝은 허망함입니다. 어디 허망함 뿐이겠습니까?

점차 몸이 쇠약해지고 공허함을 넘어 좌절과 우울 절망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위에 예로 든 단어를 잘 살펴보십시오. 모두 가치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음양이 이지러진 상태, 균형을 벗어난 상태! 정상을 벗어난 상태이니 살아있는 존재라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재적 명령이 내 몸과 마음을 흔듭니다.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하니 나를 불러 완전한 생명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손잡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2. 외로움이 치명적 병을 부른다.

혼자 지내면 삶이 고단해집니다. 밥맛도 없어지고 왠지 의욕이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 각각은 음양으로 분리되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음양은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서로에게 끌립니다. 서로를 찾습니다.

대상이 있을 땐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분리되면 마치 존립 기반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아 균형에 금이 갑니다. 마음도 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허물어집니다.

이혼하고 삶이 펴졌단 소리도 들리지만 그건 배우자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지 짝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양로원을 운영하는 수녀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미국의 한 가톨릭 재단에서 남성 전용 양로원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멀쩡하던 노인들이 양로원만 들어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치매증상을 보이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 그러려니 했답니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옆 공터에 여성 전용 양로원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보안용 펜스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은밀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더란 것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양쪽 모두 양로원의 고질이던 치매율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현명한 사제들에 의해 펜스가 걷어지고 자연스런 교류가 이뤄지며 훨씬 건강지수가 높은 양로원으로 탈바꿈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외로움은 삶의 시간을 고통으로 채웁니다. 모든 희망을 태워 버립니다. 삶에 가장 치명적인 병은 암도 바이러스도 아닌 고독입니다.

건강함은 삶 속에 있지 무균실에 있지 않습니다. 건강하고자 한다면 삶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사람 사이로 놓여야 합니다.

홀로 외로움에 가두는 순간 찾아오는 것은 질병 고독 멈춤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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