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성이가 웃고 있다!

“울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창성이가 웃고 있다!

울고 웃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그렇다고 하지만
그걸 하면 죽음의 문턱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코넬리아 드 랑게 증후군 아이들

창성이도 폐가 약한 편…
웃는 것까지
조절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어서 감사하다.

‘별걸 다 감사하게 되네’ 라는 생각마저 들지만,
만약 그것까지 조절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정신이 번쩍 들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울고 웃는 게 힘들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우리의 감각, 본능들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누리고 싶은 것임을 기억하면 감사의 문에 더욱 성큼 다가서게 된다.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것조차 식상한 시대가 되었지만 상실해 보면, 누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당연한 것들을 힘입은 것임을 말할 나위가 없다.

울고 웃는 것, 누구나 다 한다고 여겼던 그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나도 몰랐었다.

창성이가 가진 코넬리아 드 랑게 증후군(Cornelia de Lange Syndrome, 이하 CdLS)에 대해 알아보기 전까지는….

CdLS에 대해 알아보면서 영국에 사는 11개월 된 아기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에드워드의 부모는 에드워드가 웃으려는 기미만 보여도 막아야 한다고 애타는 마음을 토로했다.

CdLS를 가진 아이들 중에는 에드워드처럼 호흡기가 약해서 심하게 울거나 웃으면 질식사할 위험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CdLS는 울거나 웃으면 죽는 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끔 소설가들의 글감이 되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걸리는 병은 아니라서 갑자기 이 병에 걸려 울거나 웃을 수 없게 되지는 않는다. CdLS 아기들의 74% 정도는 저음이고, 힘이 없으며,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낸다.

창성이가 아기였을 때 병실을 지나가던 한 의사가 창성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지금 우는 거냐고 물었었다.

“네, 우는 거 맞아요….”

의사가 듣기에도 특별한 소리였나 보다. 창성이는 큰 소리로 울어본 적이 없다. 눈물을 삼키는 듯이 울어서 더 측은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크게 울어버리면 시원할 텐데, 대신 울어줄 수도 없고.

창성이도 폐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웃는 것까지 조절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어서 감사하다.

‘별걸 다 감사하게 되네’라는 생각마저 들지만, 만약 그것까지 조절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정신이 번쩍 들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창성이가 웃고 있다

창성이는 자주 웃는 편인데 가끔은 몸이나 고개를 흔들면서까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어린이집에서는 교실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고 한다.

창성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뭐가 그리도 좋은가 하고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사실 크게 좋아할 일도 별로 없을 것만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는다.

배가 고플 때나, 하고 싶은 일을 제지받았을 때는 속상한 듯 서럽게 우는데 우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럽다.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다면 그런 장을 마련해 주기도 해야 한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고,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는 것조차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표현을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면 더 건강해지겠지. 그렇게 하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그늘이 적다.

창성이와 함께하면서 구석구석 감사할 것을 많이 만나게 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사와 동행한다.

먹을 수 있는 것도, 걸을 수 있는 것도, 울고 웃을 수 있는 것도 모두가 감사다. 매 순간 감사를 가르치는 창성이의 존재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창성이가 웃고 있다.

박연숙 글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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