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가시감사 …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

‘3차원 감사’ 그 비밀은?
사도 바울의 가시감사 …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 

바울의 감사

첫째, 육체의 가시는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바울은 가시를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가시는 바울을 세상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가시 감사의 비밀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

 

역설의 예술

감사는 ‘역설의 예술’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을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3차원의 감사’(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In spite of)입니다.

3차원의 감사는 절망을 희망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역설의 예술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시 감사’가 바로 그런 감사입니다.

고통은 괴롭습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생각에는 꼭 그렇게까지 힘든 고통의 과정이 필요할까 싶은데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약함도 감사이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토록 어려움과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바울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불평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감사를 우리는 ‘가시 감사’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을 굴복한다는 것

성경에는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인해 많이 괴로워했다고 나오는데, 이 육체의 가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바울이 앓고 있던 질병, 안질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이 육체의 가시는 바울이 전도활동을 하는데도 많은 장애를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반복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단지 자신의 유익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간증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들어주실 만도 한데 하나님의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였습니다.

바울에게 이 말씀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왜 사도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을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잠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마음 자세입니다. 바울은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이고 심지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런 마음을 오래 지속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 사이에서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보다는 주님의 응답이 더 맞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자신의 뜻을 주님의 뜻에 굴복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 후로 다시 육체의 가시를 빼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뜻에 자신을 굴복하는 이것이 사도 바울의 ‘가시 감사’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거나 바란 대로 일이 풀렸을 때 감사하는 것은 참 쉽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요구가 거절당하고 내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감사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순종이 없이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성숙한 감사가 바로 ‘가시 감사’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주신 이유

장미꽃 감사 백번보다 가시 감사 한번 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가시 감사는 장미꽃 감사 백번의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차원 높은 감사의 단계입니다.

결국 감사는 깨달음의 깊이만큼 감사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깨달은 만큼만 감사합니다. 깨닫는 것 역시 주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주신 이유를 진심으로 깨닫고 나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이 없애달라고 기도하던 육체의 가시를 오히려 주님의 은혜이고 축복으로 여길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육체의 가시는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당시의 ‘금수저’였습니다. 명문가 출신이었고 유명한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으며 로마 시민권도 갖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고 갖출 것 다 갖춘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의 가시가 늘 그의 약점이었고 옥에 티처럼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권을 자랑하거나 뛰어난 학식을 자랑하려고 할 때마다 가시가 그의 육체를 아프게 찔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시가 그를 교만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복음의 방해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아프게 하는 가시 덕분에 겸손할 수 있었고,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었으며, 오히려 가시 덕분에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바울은 가시를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주님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그는 자신이 약한 바로 그 지점에서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소망이 있고, 환난 속에 지혜가 있으며, 고난이 주님께로 가는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육체의 가시를 감사의 조건으로 여긴 것입니다.

바울은 강해야 살아남고, 강해야 간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바울과 달랐습니다. 강하면 ‘너 잘났다고 하지 하나님을 의지 하겠냐’는 것이지요.

약하니까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주님을 의지하니까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역설적인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가시는 바울을 세상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세상적 쾌락과 명예에 집착해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한 번에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맘몬신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바울이 갖고 있던 육체의 가시는 늘 이 사실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되는 역설의 은혜가 바로 육체의 가시였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오늘 우리에게 ‘육체의 가시’는 나를 찌르고 괴롭히는 모든 것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 있고, 육체의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고 찌르고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없애버리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시로 인해 내가 낮아지고 오히려 무릎을 꿇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역설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시 감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음을 알려 줍니다.

글 = 전광

※  이 글은 최근 감사인생의 결정판인 ‘감사가 내 인생의 답이다(생명의 말씀사)’라는 두번째 책을 출간한 전광 목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일반인 독자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