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덕의료재단 예천경도병원 김용자 보호사

“사랑하는 우리 가족 감사합니다”
■ 인덕의료재단 예천경도병원 김용자 보호사

지난 2014년 12월 9일 인덕의료재단 감사나눔페스티벌에서 감사편지 내용을 발표하고 있는 김용자 요양보호사.

1. 외롭고 쓸쓸한 18세의 아가씨는 모든 것 참고 살았다는 것에 대해 너무도 감사합니다.
2. 49년 전에 신문에 부모형제 찾는다는 기사를 보고 사연을 보내주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3. 항상 외롭고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 찾아와 주어 감사합니다.
4. 18세의 아가씨가 명절 때 갈 곳이 없어 쓸쓸할까 찾아와 주어서 감사합니다.
5. 왕드롭포스 사탕 한 봉지 들고 관악산으로 손잡고 갔던 그리운 추억 감사합니다.

6. 영등포 대방동 실개천을 등에 업고 건너 주던 ‘넓은 등’에 감사합니다.
7. 트랜지스터라디오 어깨에 메고 등산할 때 만난 건달들 현명하게 탈 없이 해결하던 그때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8. 성호 씨의 고종사촌 누나 집에 인사시키러 가서 경상도 음식 파란 생나물에 된장 너무도 맛있었고 감사합니다.
9. 직장생활 할 때 기죽을까 자주 찾아와서 용기 주던 그때 감사합니다.
10. 사랑이 무르익고 하늘을 날던 잠자리도 시샘하던 등산길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즐겁던 등산길 감사합니다.

11. 세월이 흘러 결혼하자고 하던 그때 나는 헤어지자고 했던 그때 미안했고 참아주어 감사합니다.
12. 10시에 신길동 선다방에서 만나자고 할 때 안 나가고 애먹이다 오후 5시에 들러보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어 미안했고 감사했습니다.
13. 오고가던 수많은 연애편지 감사합니다.
14. 직장으로 찾아와 수원 갔다 오자며 손목 잡혀 경상도로 납치하던 그때 원망스럽지만 감사합니다.
15. 예천 시내에서 결혼 승낙할 때까지 3~4일을 기다려 주어 감사합니다.

16. 4일 만에 결혼하자고 하고 시내에서 막차버스 타고 가니 차가 덜컹덜컹 히프가 깨지는 것 같고 허리가 아파서 성호 씨 무릎에 앉아서 가던 그때 감사합니다.
17. 가을의 밤은 산중이라 일찍 찾아와서 들길, 산길은 어둡고 부엉이는 부엉부엉 울어대고 산짐승 우는 소리는 무섭고 밤길이라 들고 가던 정종과 고기는 내버리고 찾아온 집 감사합니다.
18. 전기불도 없고 등잔 밑에서 방을 밝히던 식구들은 우리의 방문에 놀라는 기세였고 반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19. 아침에 눈을 뜨니 집은 완전 네모난 집 안마당에 나와 보니 보이는 것은 네모진 하늘뿐 집은 4백년 된 고래등 같은 집이고 밖에 대문 열고 나오니 어디로 어떻게 왔는지 그래도 공기가 너무 맑고 푸른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20.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심정. 납치당한 19세의 어린 아가씨가 길이 없어 도망도 못 가고 울고 있으니 달래주며 죽도록 사랑하며 살자 해서 감사합니다.

21. 하회 유성룡 대감의 맏형님인 겸암 선생님의 맏자제의 집이라며 4백년이 넘었다는 집 양반이기에 결혼식은 꼭 해야 한다며 그 산길을 결혼 날 받는다며 다니시는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22. 무섭기만 하던 그때 아무리 사랑을 한다한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내 신세가 너무도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는 눈물만이 흐르는 것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손에 쥔 것은 납치당할 때 가지고 있던 핸드백…. 토닥여 주는 성호 씨가 감사했습니다.
23. 우리는 식장에서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장문의 두루마리 글을 써서 모든 것 이해 바란다는 글을 써서 읽기로 합의 본 사랑하는 성호 씨 감사합니다.
24. 첩첩산중 하늘아래 첫 집. 집을 떠나 하회로 결혼식하려고 온 식구가 집을 나섰습니다. 감사합니다.
25. 하회 2동 어르신들 다 모인 작은아버님 넓은 마당에서 족두리 쓰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긴 두루마리 글을 읽을 때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신부도 우느라고 목이 메이고 그래서 우리는 사상유례에 없는 결혼식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6. 우리는 신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외로운 고아인 19세의 어린 아가씨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계신 부모님과 서울의 친구들에게 나 혼자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며 밤하늘에 고했습니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가슴에 맺힌 엄마. 나 결혼했어. 감사해.
27. 들에 나가면서 이파리가 넓은 식물을 보고 피우는 담배라고 할 때 거짓말이라며 어떻게 이런 것이 담배야 하던 그때 감사합니다.
28. 동그란 이파리에 노란꽃이 예쁘 게 핀 것 보고 땅콩이라 해서 땅콩은 어디 있고 꽃만 있느냐니 땅속에 땅콩이 열린다고 하니 너무도 놀라운 신기하기만 하던 그때 감사합니다.
29. 밤이면 바깥마당에 멍석 깔고 모깃불 피우며 누워서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너무도 아름다움에 감사합니다.
30. 모깃불에 감자를 구워서 먹으며 불이 꺼지면 쑥을 베다 꺼져가는 불을 살리려고 호호 불어대던 그때 감사합니다.

31.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반딧불. 도시 살던 나는 귀신불이라며 놀라니 반딧불이라고 잡아서 보여주던 그때 감사합니다.
32. 외롭던 나는 사랑 속에 외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이 사랑하는 서방님께 감사했습니다.
33. 낮에는 산나물 캐러 산에 가고 도토리 주워오고 다리 아프다면 그 자리에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며 도토리 한 자루 주워오면서 나한테 찾아올 때 감사합니다.
34. 산 너머 한 집뿐인 우리 집 예쁜 새댁이 산다며 산 넘어서 구경 오던 사람들 배꽃보다 더 희고 예쁜데 며칠이나 살까 하던 사람들 감사합니다.
35. 아버님께 불 때는 것, 밥물 맞추는 것, 보리쌀 삶는 것, 감주, 고추장, 된장 만드는 것 모두 배웠습니다. 묵 하는 것도 산 너머 사람들이 가르쳐주고 감사합니다.

36. 남편과 함께 주워온 도토리묵을 하는데 잘못해서 죽이 되어 쏟아 버리니 아버님과 남편 빙그레 웃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37. 애라 모르겠다 도토리가 있으니 묵을 또 했는데 수제비가 되고 말았어요. 다 버리고 나니 재료가 없다고 하니 또 주워 오던 도토리 감사합니다.
38. 첫아이 임신 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9. 김장김치가 먹고 싶다 하니 산 너머 아주머니들 데리고 김장 장만해 주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40. 장에 가시면 아버님이 사탕, 엿, 대추, 떡 사가지고 오시어 아가 숨겨놓고 혼자 먹으라 하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41. 숨겨 놓은 맛있는 음식 시동생 16살, 18살 그리고 나는 19살 고만고만한 나인데 시동생 훔쳐 먹으면 아버님께 일러주고 꿀밤 머리에 한 대 먹이면 매롱하던 그때 철없던 그 시절 온 식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때 감사합니다.
42. 홀시아버님 두루마기, 바지저고리 빨아서 바느질을 할 줄 몰라 방바닥에 빨은 옷을 쭉 펴놓고 식구들 가에로 앉으라 하고 방 한가운데 배 쭉 깔고 먼저 바느질하던 줄을 찾아서 꿰매면 빙그레 웃으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43. 보리밥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니 아버님이 쌀밥인 아버님 밥을 반 잡수시고 반을 며느리에게 주시는 사랑하는 아버님. 이보다 행복한 생활이 있을까요. 아버님 감사합니다.
44. 다들 들에 일하러 가면 나는 집을 보라하시고 햇볕 보지 말라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45. 점심을 맛있게 해가지고 들에 가서 쌀밥 아버지여 반 남겨 주세요 하면 그래그래 하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46. 명절 쇠러 하회 갈 때는 그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때 위험한 길은 남편 등에 업고 걷던 그때 감사합니다.
47. 가을이 다가고 어느 겨울 아버님은 서울 생활이 그리울 텐데 이제는 서울로 가라시며 새아가는 추우니 남편만 먼저 보내 자리잡고 설을 쇠고 올라가라며 남편만 보내시던 그때 감사합니다.
48. 남편 없는 밤에 혼자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행복이라는 것이 있구나. 시집이 아니라 친정이다. 친정생활도 어느 누가 나처럼 행복하게 할까 생각하던 그때 감사합니다.
49. 일주일도 안 되서 혼자 못 있겠다며 아내를 데리러 온 남편. 눈앞에 아른거려 혼자 못 있겠다고 내려온 남편님 감사합니다.
50. 이렇게 해서 신혼의 달콤한 시골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올라온 그때 감사합니다.

51. 그때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고 우리는 봉천동에 한 달에 월세 3000원인 방을 보증금 3만원 주고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2. 봉천동 산꼭대기 집은 너무도 춥고 방에서 물이 얼고 그랬는데 우리의 뜨거운 체온으로 그 추위를 이기던 그때 감사합니다.
53. 신문사에 총각으로 있을 때 직장이 좋았지만 시골생활 1년 하고 오니 직장도 물 건너갔고 날은 춥고 우리는 긴장을 했다 그때 감사합니다.
54.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이발소에 취직해서 숨을 좀 쉴 수 있어서 그때 감사합니다.
55. 입덧으로 밥 냄새를 맡기가 힘들 때 쪼들리는 생활이지만 매일 배를 사가지고 와서 깎아 주던 그때 감사합니다.

56. 그때는 시절이 어렵기 때문에 봉천동 가난한 동네는 매일 싸우는 것이 일과인 것 같은 동네. 순진한 19살 새댁이 물든다고 이사를 밥 먹듯이 하던 그때 감사합니다.
57. 임신한 아내 닭 잡아 고아준다고 했는데 닭을 못 잡고 병아리한테 재판한다고 피고 병아리는 남의 배추를 뜯어 먹었기에 사형에 처함하고도 마음이 약해 못 잡던 그때 감사합니다.
58. 어려운 생활이라 달콤하던 신혼생활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불러오고 그래도 참던 그때 감사합니다.
59. 너무 사랑이 넘치면 시샘을 한다고 마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서방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60. 첫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집에 시샘의 마가 끼어 이발소에서 총각이라면서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하는 남편이 감사했습니다.

61. 그 여자는 울며불며 소리치고 3번이나 찾아오더니 제풀에 떨어져 나가 주었습니다. 그 여자 감사합니다.
62. 첫아이 딸이 태어났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집에서 진통을 겪는데 남편은 계란을 깨어 입에 넣고 새벽부터 진통을 겪고 오후 5시까지 이제 죽는 것 같아 의사가 왕진 왔는데 왕진비 하나도 안 받고 도와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63. 놀라서 땀 뻘뻘 흘리던 서방님 감사합니다.
64. 첫딸의 울음소리에 방안에는 생기가 돌고 온 세상이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가 감사해.
65. 좋아하시던 아버님. 예쁜 아기 할아버지 닮았다 하시던 아버님 감사합니다.

66. 첫국밥 해주고 목욕시키고 빨래 매일하던 남편 감사합니다.
67. 즐거움도 잠시 우리는 방세를 못내 이사를 또 해야 했지만 직장 잃은 남편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던 그때 굳건하게 지키던 내 가정 내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68.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조금 모은 돈 모래사업 한다고 서류 만들고 허가 낸 허가증. 사기꾼에게 서류까지 몽땅 사기 당하고 말았으니 죽으라 죽으라 하던 그때 참고 이겨낸 아픔 남편 감사합니다.
69. 방세 대신 이불과 세간 주인집에 뺏기고 알몸으로 그 집을 나온 3식구. 충청도 아주머니가 고향 사람이라고 도와주어 화장실을 반으로 막은 냄새 나는 방에 아기와 엄마는 살고 밥도 애기엄마 하면서 챙겨주시던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70. 아주머니한테 3천원 빌려 시골 아버님께 내려와서 15일 몸보신 아버님께서 시켜주시고 돈 마련해 서울로 남편 찾아와서 새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아버님 감사합니다.

71. 모든 것 접고 잠실대교 밑으로 이사하면서 돌망탱 노동을 하는 남편 처음 하는 노동 몸살 나서 죽을 고비 넘기던 남편 그래도 아가와 아내를 위해 이겨낸 남편 감사합니다.
72.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그러니까 1970년 대홍수가 나던 그때 우리는 잠실대교 밑에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시골로 내려 왔습니다. 그때 서울생활 접고 미련 없이 내려와 준 남편 감사합니다.
73. 다시 그리웠던 시골 생활이 시작되면서 둘째를 임신하고 행복했던 생활은 다시 시작되던 그때 감사합니다.
74. 둘째아들이 태어나던 1972년 집에 경사가 났습니다. 아들 감사해.
75. 우리 집은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셋째를 임신하여 연년생이 되고 보니 첩첩산중 외딴집에는 찾아오는 사람 없지만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 감사합니다.

76. 넷째가 태어나서 도둑이 밤에 왔다가 6개월 된 아기가 우는 바람에 불을 지르고 도망갔습니다. 그때 아이들 다치지 않고 등 넘어 불 끄러 온 사람들 감사합니다.
77. 그 큰 아래채 불에 다 타고 위채만 썰렁하게 남은 집. 아이들 놀란다고 섣달 하얀 눈 위에 이불 깔고 누워 있었는데 6개월 아이가 창자가 꼬였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기도하던 그때 주님 감사합니다.
78. 죽는 아이를 등에 업고 울며울며 달리던 산길 10여리 집에 불은 났고 철없는 아이들만 집에 놔두고 병원으로 가던 그때 탈 없이 기다려준 우리 아가들 감사해.
79. 남편은 시골생활을 끝내 못 참고 집을 나가 한 달에 한두 번 오더니 이제 여자까지 데리고 온 남편. 그때 참아준 내 마음 감사합니다.
80. 창자가 꼬여 죽을 고비 넘기더니 4살 때 경운기에서 떨어져 달리던 경운기 바퀴에 다리가 박살난 우리 아가. 그 다리와 아기를 감싸 안고 혼자 울면서 달리면서 ‘죽지 마 죽지 마’ 하던 그 눈물의 길에서는 아이의 체온이 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아가 감사해.

81. 왜 내 인생살이 이리도 고달플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아이들과 이 산중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죄일까. 이 아이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너무도 외롭고 서러움에 우리 오빠를 경찰서에 의뢰해서 다시 찾아보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82. 오빠가 산 너머 동네 이장님하고 밤중에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오빠, 이장님, 감사합니다.
83. 오빠를 붙잡고 그동안의 고생한 것 이야기하며 나도 사람 사는 동네에서 남들과 이야기하면서 살고 싶어. 나를 이곳에서 빼내 주어 하던 그때 오빠. 죽은 막내 동생인 줄 알았던 것이 이렇게 살다니 하며 울던 오빠 감사합니다.
84. 오빠가 지보시장에 집 얻어주고 장사하도록 해주어서 오빠 감사합니다.
85. 그러나 불행은 험한 인생길은 여기서부터 더욱 비참했습니다. 장사 끝내고 10리 길을 걸어서 아이들 걱정되어 그 산길을 혼자 걸어오면 부엉이는 울고 산짐승 울고 그 속에서 아래채는 불타 없고 위채에서 방문 걸어 잠그고 있는 아이들 붙잡고 울고 남편이 원망스럽고 하지만 아이들 기다려주어 감사해.

86. 우리 아이들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은 엄마 얼굴만 바라보며 무럭무럭 자라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장한 아이들 감사합니다.
87. 대학 등록금 내라고 주는 것 전부 놀음해 없애고 그래서 그 뒤에는 부산, 대전, 안동으로 직접 내러 다니던 그때 허름한 옷차림의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던 아이들 감사합니다.
88. 잘 나고 공부도 잘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수없는 고통 받아가며 살았지만 착하게 자란 아들 감사합니다.
89. 아이들 6명 바르게 다 자라서 박사도 되고, 대학 강의도 하고, 회사 부장에 작은 사업체 사장님을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이 고생이 끝났구나 했을 때 감사합니다.
90. 행복에 마가 낀다고 남편한테 병이 찾아왔습니다. 머리 시술 6백 만들어서 수술 무사히 마쳐준 아이들 감사해.

91. 원망은 하지만 그래도 아빠이기에 신경 써 주는 아들, 딸 감사해. 너무 감사해.
92. 남편한테 찾아온 우울증. 매일 죽는다고 하면서 가족들을 긴장시키는 남편이요 아이들 아빠. 어두운 방에서 헤어나지 못 하는 아빠를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 주는 아이들 감사해.
93.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서 원망도 하지만 아이들 아빠요. 어떻게 해서든 정상으로 돌려 놓아야지 하는 마음이 앞서기에 마이신보다도 쓴 입안을 물로 헹구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주님 가지고 가시고 도와주세요 기도하던 맘 감사합니다.
94. 온 식구가 1년을 매달려 이제는 남편이 완전히 정상이 되고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빠 감사합니다.
95. 참사람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요. 또 하나의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둘째 사위가 위암 3기라 수술하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시집에 어르신들이 안 계시기 때문에 데려왔는데 순순히 따라온 사위 감사해.

96. 남편과 나는 산으로 들로 민들레, 바위손, 좋다는 것은 전부 구해서 약을 해서 먹이고 반찬도 신경 쓰고 시간 맞춰 먹이는데 불편 없이 거리낌없이 지내는 사위 감사해.
97. 1년 반을 우리 집에 있다가 이제는 완쾌가 되었습니다. 항암치료 한 번도 안하고 집에서 보살핀 것이 이제는 암세포가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니 감사합니다.
98. 사위가 완쾌되어 8월 31일 1년 6개월 있다가 대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재발하지 않기를 주님께 기도드리며 주님 감사합니다.
99. 이제 큰아들 박사고 부장님이고, 둘째, 막내는 작은 사업하는 사장님들이고, 제집 두 채씩 가지고 있고, 딸들 제대로 시집가서 오순도순 잘살고 손자, 손녀 13명 모두 건강하고 우애 좋게 잘 사니 모두모두 감사해.
100. 이제 남은 여생 남편과 모든 것 잊고 가족을 위해 건강하게 살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해가면서 세상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또 그렇게 되리라 믿으며 언제나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

■ 소감문
“지금의 내 자리에서 감사”

불씨간담회에서 참석한 김용자 씨.(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감사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감사는 생활입니다. 삶과 죽음이 동행하듯이 삶과 감사는 동행하는 것 같아요.

눈뜨면 지난밤 무사히 하루를 보냈던 것, 내 생활환경에서 작게 크게 일어나는 것들, 하루를 보내고 이 밤을 맞은 것 등, 세월 속에 감사입니다.

모자라도 내 것에 만족하고 지금의 내 자리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자식들한테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감사글을 쓰면서 생활한 지도 4년이 되었네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시작하면서 생활한 것이 이제는 미움을 사랑으로 베풀고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중년이 되도록 살아왔던 길이 사랑도 미움도 고달픔도 너무 컸던 지난 세월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오늘의 행복을 안고 살기에 부끄러운 글을 쓰고 말았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오늘이 있기에 내일을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

전문가 논평
안동 하회마을 19세 새댁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애환을 일일이 나열하다 보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인생살이가 잘 짜여진 각본대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탄식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인생살이인 것이다. 예천 경도병원의 김용자 씨가 쓴 100감사를 읽다 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김용자 씨는 19세 고아일 때 납치당하다시피 이끌려 억지로 사상 유례없는 결혼을 했다.

산 너머 한 집밖에 없는 외딴 집에서 같은 또래의 시동생 둘과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신혼 초에는 시아버지의 사랑이 워낙 극진해서 그녀는 시집이 아니라 친정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를 못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그들은 너무나 가난했고 방세를 내지 못해 이불과 세간을 빼앗긴 채 알몸으로 쫒겨나기도 했다.

그들은 화장실을 반으로 막은 냄새나는 방에서 3식구가 살아야 했고, 나중에는 잠실대교 밑에서 거주하다 대홍수가 나서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들은 결국 시골로 다시 내려 왔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하나도 없는 첩첩산중 외딴 집에서 살면서 그녀는 자녀를 6명이나 낳았다.

그런데 바람이 난 남편은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그 첩첩산중에 도둑이 들어서 들키자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버렸다.

그 와중에 6개월 된 아이가 창자가 꼬여 철없는 아이들만 집에 놔둔 채 죽어가는 아이를 등에 없고 울며불며 10리 산길을 달리며 탈 없이 아이들이 기다려 줄 것을 기도하던 그녀였다.

어렵게 만난 오빠의 도움으로 10리 먼 길을 장사하러 다니면서도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내었다.

뒤늦게 돌아온 남편은 우울증으로 힘들게 했지만 미워하는 마음 갖지 않으려고 기도에 매달렸고, 아이들 역시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매일 아빠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온 식구의 사랑 덕분에 남편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6명 자녀 역시 모두가 훌륭하게 성공해 각자의 분야에서 잘 살고 있다.

그녀는 험난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모든 일들을 감사로 받아들이면서 지금도 4년째 감사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김용자 씨! 당신이야말로 감사의 왕불씨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어머니이십니다.

안남웅 마케팅신문컨설팅 본부장은 100감사 창안자로 포스코ICT 감사경영 강사를 시작으로 포항시청, 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협력사, 네오디에스, 한미글로벌, 천지세무법인을 비롯, 군부대와 공공기관의 인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의·교육·컨설팅 문의 010-4350-1619  namwoongan@yahoo.com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