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감사 창안자 안남웅 님이 아들 승우에게 띄우는 편지

100감사 후

아버지의 욕심
■ 100감사 창안자 안남웅 님이 아들 승우에게 띄우는 편지

지난 2016년 8월 문경 웨스턴오브가나안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다.

아들에게 쓴 100감사

‘100감사의 위력’에 매료된 저는 미국 곳곳에 감사 강의를 하러 다니던 터라 생각해 낸 것이 아들에게 100감사를 써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너를 뱃속에 넣고 열 달 동안 태교를 했으며, 장차 네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했는지. 또한 아빠는 네가 태어나는 날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중동 사막에서 3일간 금식하며 네가 건강히 태어나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그 뒤 우리는 누구보다 말이 통하는 부자지간이 되었고 지금은 저에게 가장 믿음직스럽고 더 이상 ‘아버지의 욕심이 없는’ 귀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 아들 안승우 씨의 인터뷰가 실린 포스트 트리뷴 지. 당시 언론은 ‘영어도 모르고, 풋볼경기의 게임룰도 잘 모르는 학생이 어떻게 명문고의 스타선수가 될 수 있었는가’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요청, 메인 기사로 실렸다.

 

“내 아들 승우야,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젊은 시절, 저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참 많았습니다.

어려서 엄한 아버지 밑에서 크며 ‘난 커서 절대로 엄한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정작 어른이 되자 저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엄한 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밖에서는 선하고 부드러운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데 집에만 가면 얼굴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딱딱해졌습니다.

그래도 딸에게는 무섭게 안 했겠다 싶은데 딸아이는 ‘아버지가 무서웠다’고 반박했습니다.

서운한 마음에 제가 얼마나 딸아이를 사랑하는지를 알게 하려고 온갖 비유를 들어가며 얘기했습니다.

“만약 네가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한다면 아빠는 기꺼이 내 장기라도 네게 줄 거야.”

“아빠, 아빠가 저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저는 왜 아빠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요?”

‘딸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아들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어떻겠는가?’

매사에 이것저것 간섭하고 잔소리를 해대니 아들은 저를 슬슬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조립장난감이나 글라이더 만들기 같은 기계 쪽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최소한 공대는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며 입만 열면 부담을 주었습니다.

아들이 하도 공부하기를 싫어해 초저녁부터 공부하라고 책상에 앉혀 놓았지만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들이 보기 싫어 아들 책상을 내 방 책상 옆에 갖다 붙여 놓고 날마다 감시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내 옆에서 딴짓을 하거나 하품을 해대서 자주 야단을 쳤습니다. 매번 야단치니까 아들은 울기도 하고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사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제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아들도 딸도 모두 엄마 편이고….

“그렇게 윽박지른다고 공부를 하겠어요? 제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지.”

아내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이들 교육 문제로 종종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감사나눔연구소 제갈정웅 이사장은 물이 담겨 있는 유리컵에 살아있는 장미꽃을 꽂고 실험을 하며 “감사합니다”와 “짜증나”, “공부 좀 해라” 세 가지 종류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중에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들은 장미꽃이 가장 흉한 모습으로 바뀌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줘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특히, ‘공부해라’와 같은 명령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오랜 후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될때까지도 공부를 하지 않고 빈둥대는 것을 더 이상 놔둘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교육 환경이나 여건을 바꿔주면 좀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자 아들은 저하고 상의도 없이 교내 풋볼팀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공부하고는 담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부 쪽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아들이 운동에서는 탁월한 자질을 나타내었습니다. 지역 고등학교 풋볼 선수 중에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지역 신문에 기사가 종종 실리곤 했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연방 정부에 스카우트되어 일하고 있으니 오로지 공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쳤던 제가 우습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운동을 하는 동안 제가 늘 걱정하는 것은 인성 문제였습니다. 아내나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고 충고를 해도 빈정거리곤 했습니다.

그 당시 ‘100감사의 위력’에 매료된 저는 미국 곳곳에 감사 강의를 하러 다니던 터라 생각해 낸 것이 아들에게 100감사를 써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너를 뱃속에 넣고 열 달 동안 태교를 했으며, 장차 네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했는지. 또한 아빠는 네가 태어나는 날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중동 사막에서 3일간 금식하며 네가 건강히 태어나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등의 내용이 담긴 100감사 편지를 아들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누구보다 말이 통하는 부자지간이 되었고 지금은 저에게 가장 믿음직스럽고 더 이상 ‘아버지의 욕심이 없는’ 귀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절대로 공부하라고 재촉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부드럽기 짝이 없는 아버지가 되어 대를 이어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엄한 아버지의 악순환을 끊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운전을 배운 지 1주 만에 면허증을 따고 운전도 나보다 더 잘하는 아들입니다. 이 아들에게 왜 저는 그동안 모든 게 못마땅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안남웅 글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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