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불허전’의 실존 인물 허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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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진단하고, 허임이 침을 놓았다”
드라마 ‘명불허전’의 실존 인물 허임 이야기

TV드라마 ‘명불허전’에서 허임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김남길 배우.

허임? 혹 허준 아녀?

지난 10월 1일 16회로 막을 내린 드라마 ‘명불허전’이 있었다. 과거의 조선과 현재의 서울을 오가며 두 남녀가 의술을 펼치는 데, 남자는 침의(鍼醫)요, 여자는 흉부외과 의사였다.

그 침의의 이름은 허임. 혹 허준을 잘못 말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낯선 이름 허임, 알고 보니 그는 17세기 실존 인물이었고, 침에 관해서는 허준을 능가하는 뛰어난 의술가였다.

‘동의보감’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명의인 허준이 침술 명의로 알려진 것은 ‘소설 동의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사 사료에 의하면 허준은 침이 아니라 약재로 병을 다스리는 의원이었다.

 

선조의 편두통을 고치다

나이로 따지면 허준이 허임보다 24살 많았지만 둘은 동시대에 활동한 의술가였다.

선조 때의 일이다.

“1경 말 상이 앓아 오던 편두통이 갑작스럽게 발작하였다. 직숙하는 의관에게 전교하여 침을 맞으려 하였다. 입직하고 있던 승지가 아뢰기를, ‘의관들만 단독으로 입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니 입직한 승지 및 사관이 함께 입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침을 맞으려는 것이 아니라 증세를 물으려는 것이니, 승지 등은 입시하지 말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허임이 이미 합문에 와 있습니다’ 하니, 들여보내라고 전교하였다. 2경 3점에 편전으로 들어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허준이 아뢰기를,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차례 침을 맞으시는 것이 미안하기는 합니다마는, 침의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병풍을 치라고 명하였는데, 왕세자 및 의관은 방안에 입시하고 제조 이하는 모두 방 밖에 있었다.

남영이 혈을 정하고 허임이 침을 들었다. 상이 침을 맞았다.”(‘선조실록’에서)

그 뒤 선조는 침을 연이어 맞았고, 한 달 뒤 고질적인 편두통이 나았다. 선조는 허준에게는 말 1필을 하사했고, 6품의 허임에게는 파격적으로 3품 당상관 벼슬을 내렸다.

이는 당시 조정에 파란을 일으켰다. 허임은 관노 출신의 천민이었기 때문이었다.

 

허임이 직접 쓴 침구전문서의 효시인 ‘침구경험방’

천민에서 당상관까지

허임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의술을 배운 계기는 ‘침구경험방’ 서문에서 어렸을 때 어버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침의로 활동했으며, 임진왜란기에는 당시 왕세자로 전란 극복을 진두지휘하던 광해군을 모시고 다니면서 광해군의 인후증, 편두통 등을 치료하기 위해 수시로 침(鍼)을 놓았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자 허임도 남양 도호부사에서 파직되고 위성공신호도 10년 만에 삭훈되었다.

하지만 그의 침술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으므로 그를 쫓아낸 인조마저 수시로 허임을 불러 침을 맞았고 효과를 보자 상을 내렸다. 그리고 정사원종공신으로 녹훈까지 하였다.

 

백성을 위한 ‘침구경험방’

허임은 평생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침구전문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침구경험방’을 남겼다. 이 책은 그 자체가 허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허임은 서문에서 책 내용과 펴내는 뜻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평소에 듣고 본 것을 가지고 대략 편집하고 차례를 지어 먼저 병을 살피는 요지를 저술하고, 아울러 질병의 전환 구조를 논하고, 보사의 법을 밝히고, 취혈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다.

또 잡론 약간을 저술하고 효과를 시험해 본 중요한 경혈과 병에 합당한 약을 기록하여 합해서 한 권으로 만들었다. 감히 스스로를 옛사람의 저술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생 동안 고심한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의원 제조 이경석은 이 책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의(太醫) 허임은 평소 신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평생 치료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가 없다. 그중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경우도 많아 일세에 명성을 떨쳤으며 침의들에게는 으뜸으로 추앙되었다.

지금 이 경험방은 귀로 듣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손으로 시험해 본 것이다. 분명치 않은 것은 분명하게 하고, 번거로운 것은 요약했으며, 틀린 것은 바로잡았다.”

1644년(인조 22)에 전라도 감영에서 목판본으로 처음 간행된 ‘침구경험방’은 이후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한글본도 나왔다.

일본에도 전해져 17세기 초에 이미 일본 판본으로 간행되었고, 중국에서도 청나라 말기부터 이 책의 내용이 포함된 ‘침구집성’이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침과 뜸을 대중화하여 백성들의 생활의술로 보급하고자 한 허임의 뜻은 지금도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국민 건강 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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