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포항 지진으로 다시 새겨본다
박태준의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교색(校色)인 ‘POSTECH 레드’를 기본 색상으로 하여,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POSTECHIAN의 패기와 도전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포스텍 로고. / 포스텍 대학본부 노벨동산 안에 있는 박태준 회장 조각상

지진 피해 없는 포스텍

지난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경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했다. 건물들이 흔들렸고 일부 지역에서는 균열이 발생하거나 기울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진 진원지에서 가까운 포항시 북구에 위치한 한동대는 직격탄을 맞았다. 외벽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손상이 심해 건물 출입을 통제했다.

한동대 상황이 알려지면서 갑자기 포스텍이 주목을 받았다. 여러 차례의 지진에도 포스텍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면 기사로 다룰 정도였다. 11월 17일자 기사를 보자.

“31년 전 내진 설계를 하지 않고도 이번 지진을 견딘 건물이 있다. 포항시 남구 지곡동의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이다. 1986년 완공한 포스텍 건물 35개 동(棟)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진앙과의 거리(약 11㎞)가 상대적으로 멀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포항시청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포스텍이 있는 포항 남구에서만 230여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포스텍에서 1㎞ 떨어진 대잠동의 27년 된 한 5층 아파트에선 화장실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포스텍은 작년 9월 발생한 경주 강진 때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당시에도 진앙과의 거리는 30㎞ 안팎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진원은 바로 박태준 포스텍 설립자였다. 이어지는 조선일보 기사를 또 보자.

“포스텍이 강진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캠퍼스 시공을 진두지휘한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의 원칙 시공과 안전한 건물을 짓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번에 일부 천장 내장재가 덜렁거린 피해를 본 포스텍 건물은 오히려 1997년 지은 것이었다. 포스텍 설립 때 건설본부장이었던 이대공(76) 애린복지재단 이사장은 ‘박 전 회장은 30여년 전 이미 지진에 대비하고 1000년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지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황량한 영일만 주변에 세계 최고의 제철소를 지은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은 1969년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1고로 건설에 나섰을 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상의 핏값으로 제철소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패하면 조상들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일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성공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는 모두 우향우 해서 저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조상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쇠를 만들어 조국과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철보국!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의 가슴 속에다 이 네 글자를 아로 새기십시오.”

현재의 포스코인들까지 금과옥조처럼 항상 되뇌고 있는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이것이 오늘날의 포스코를 만든 정신이었고, 그것이 포스텍 설립 과정에도 여실히 반영되었다.

“그는 지진에도 대비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로 생각되던 때였다. 박 전 회장은 수시로 ‘우리나라도 언제든 지진이 날 수 있다. 학교 모든 시설이 수백년에 한 번 오는 강진에도 안전할 수 있도록 지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박 전 회장은 지진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실무진은 ‘아니 우리나라에 무슨 지진이 온다고 호들갑을 떠시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진 설계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던 때였다. 이 이사장은 ‘내진 설계 기준이 없었다. 그냥 설계도면 보고 원칙대로 정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대로, 박 전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지가 포스텍을 지켜냈다.

 

존경의 감사를 전한다

‘시사상식사전’에 소개된 박태준 전 회장의 이력을 간단히 보자.

“1968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종합제철소를 건설하라는 지시를 받고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에 취임, 제철보국(製鐵報國ㆍ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을 내걸고 1973년 6월 종합제철 일관공정을 완공시켰다.

포스코 역사 40년 중 26년을 CEO로 일한 그는 1992년 명예회장이 되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포항제철을 연간 2100만톤의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 3위 철강사에 올려놓았다.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이 고인을 가리켜 ‘미국 카네기를 뛰어넘는 철강왕’이라 평할 정도로 철강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1987년 철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베세머 금상을, 1992년에는 세계적 철강상인 윌리코프상을 수상하였다.”

여기에 덧붙일 게 생겼다. ‘연구에 중점을 두고 소수 정예 교육을 지향하는 포스텍을 영원히 지키고 있는 선구자’라고 말이다.

“이 이사장은 ‘정말 지독한 분이었다. 이번 지진 때 선반의 컵 하나 안 떨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포스텍 바로 옆 교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 아파트는 당시 박 전 회장이 ‘외국 석학들이 와서 살 곳이다.

튼튼하게 짓는 건 기본이고,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리지 않도록 지어라’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매일 와서 지켜본 곳이라고 한다.”

기본과 원칙을 철저히 지킨 ‘우향우 정신’, 모든 일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제철보국’ 정신, 그것이 바로 또 일어날지도 모를 지진과 여진에도 걱정을 놓게 하는 박태준 전 회장의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어려운 시기, 그의 정신을 다시 깊이 새기며, 존경의 감사를 전한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