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소리

 

기자가 감사 말하기와 쓰기가 감사 에너지를 축적시키고, 그것이 어느 순간 자신도 주위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말을 들은 지는 5년 남짓이다. 이론적으로 수긍을 했지만, 내가 그걸 해서 변화를 도모하겠다는 마음은 품지 않았다. 삶을 개선시키는 툴(tool)은 숱하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3년 전 감사나눔신문과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되면서 자의든 타의든 감사 기사를 작성해야 했고, 감사 글들을 계속 접해야 했다. 신문 마감 때에는 도대체 몇 번이나 ‘감사’라는 단어를 쓰고 들여다보고 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래도 새로 일하는 곳인 만큼 헤아릴 때까지 헤아리며 감사를 내게 밀착시키려고 했다.

신문이 나오고 나면 며칠은 ‘감사’라는 말만 들어도 무감각했다. “밥 먹었어요”라는 말처럼 의례적으로 들렸다. 그것도 잠시 다시 ‘감사’를 키워드로 기사를 써야 했고, ‘감사’로 절절한 사람들의 사연을 읽어야 했다. 양이 쌓이면 질적 변환이 일어난다고 했던가, 감사라는 말이 주는 묘한 에너지가 내 안에도 스멀스멀 쌓이면서 내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5감사를 쓰고, 가족 감사를 쓰고, 내 자신 감사를 쓰고, 업무 감사를 쓰고, 글쓰기 공부를 위해 매일 쓰는 글에도 “감사합니다”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지속적인 감사 쓰기와 일상에서의 감사 말하기가 늘어나면서 감사 에너지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예전 같으면 속에서 화가 치밀면 험한 말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려고 해도 전처럼 날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몸이 그런 것을 제어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선을 넘어 속엣말이 나오면 아차 싶어 반성하는 모습도 전과 다른 상황이었다.

감사 에너지가 마음은 물론 몸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한쪽 구석에 깊이 쟁여놓은 무거운 숙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100감사 쓰기’였다. 언젠가 한 번에 쭉 쓰려고 하다가 두세 개 쓰고는 접었다. 불효자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래도 해내야 할 것 같아 틈나는 대로 조금씩 썼다. 쓰고는 너무 미안해 접고, 쓰고는 너무 미안해 접고. 결국 “감사합니다”와 “미안합니다”를 번갈아 쓰면서 완성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지속 감사로 나도 모르게 감사 에너지가 늘어나서 그랬을 것이다. “감사는 훈련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음에 더 많은 부모님 감사가 있을 것에 미리 감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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