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한 소년의 성장고백

 

 24살이 되기까지 정규교육조차 못받은 소아마비 장애인 
 41살에 미합중국 라이트주립대 음대교수 된 차인홍 교수

 

저는 자랑할래야 자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제 경력을 보고 굉장히 화려하다고 말씀을 하시는데요, 사실 맞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제 이력서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내가 이렇게 화려한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수치스럽거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하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살아왔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제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력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력인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도와주신 많은 분들의 도움과 헌신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탄다는 것입니다. 삶을 포기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불행한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두번째로 저희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180cm가 넘는 키와 부잣집 아들처럼 생긴 외모만 보고 ‘부모덕에 편하게 살아왔으려니…’라고 말합니다만, 보통 가정보다도 더 가난했습니다. 

제가 아홉살이었던 당시 부모님은 저를 ‘고아원 같은’ 재활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제가 6남매의 막내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보낼 수 없는 나이였을텐데…. 그곳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습니다. 
간혹, 부잣집 자녀로 태어났지만 장애로 인해 재활교육을 받지도 못한 채 ‘불쌍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숨어살다시피 하다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결국은 무능한 성인이 되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저희 부모님에게 참 감사한 것은 저희 어머님이 학교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신 옛날 분이셨지만, 저는 굉장히 현명한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사랑받는 아홉 살 막내였지만, 집을 떠나 들어간 재활원에서는 외롭고도 힘들게 청소년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때 받은 고통과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소아마마비 장애로 휠체어를 탄 아픔보다 더 큰 마음의 아픔이 더 컸습니다. 

참 힘든 생활을 보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준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재활원에서 생활하는 ‘미래의 아무 희망없는’ 아이들의 소식을 접한 서울대학교 출신 여자 선생님이 재활원에 찾아오셔서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전 지역의 한 유지의 딸이었던 그 여선생님이 재활원에 있는 저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줄 이유가 전혀 없었고, 그런 누추한 곳에 찾아올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아직도’ 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이 그곳에서 오셨던 것은 제 인생에 하나의 선물이자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약점은 24살이 될 때까지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24살이면 대학을 졸업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나이입니다. 

역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미국의 한 주립대학교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평가도 잘 받아서 정년이 없는 종신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규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도 없고, 음악을 전공한 적도 없고, 유명하다는 음대 출신도 아닌 제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검정고시로 시작해서 미국의 대학으로까지 가게 된 것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과 많은 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타임라인을 되돌아보면 약 다섯번의 위기가 찾아왔었습니다. 바이올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마다  어디에선가 누가 나타나서 바이올린을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참 신기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바이올린을 계속하게 된 것이 정말 ‘기적에 가까운’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마흔한살에 미국 주립대학교의 음악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으시더니 저의 강점 두 가지인 ‘받아들임(인정), 기다림(인내)’의 강점을 짚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큰 열매를 얻게 된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제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은 41년된 노트가 있는데 저의 인생에 큰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이름과 주소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휠체어는 나의 날개

차인홍 지음

마음과 생각

 

지난 5월 27일 일요일 오후 2시. 

휴일의 나른함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조차 멈추게 할 애절하고도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이 평화교회(인천 남구 승학길, 담임목사 손태환) 건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오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듯’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한 미 라이트 주립대 음대 차인홍 교수. 그의 곁에는 그의 모든 것을 함께하며 힘이 되어준 동행자(?) 휠체어가 놓여 있었는데, 차 교수는 ‘나의 날개’라고 부른다. 

차인홍 교수에게 “감사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감사는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제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항상 강조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족할 때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가 무언가 많이 가졌거나 이루었을 때도 우쭐할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하거든요.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산=이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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