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운동장을 누비며 뛰던 선수들이 독일전을 승리로 끝내고 함께 모여 격한 감정을 나누고 있다. 숙인 그들의 뒷모습에 감사를 전한다. <MBC 방송화면 캡쳐>

 

4년마다 일어나는 폭풍
2018 러시아월드컵으로 전 지구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1위 독일을 2대0으로 이겼지만, 16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16강에 오른 국가는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차분하게 멋진 경기 자체를 즐길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월드컵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객관적으로 내릴 수 있는 생각들입니다.
대한민국이 스웨덴과 멕시코에 패배했을 때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국 축구를 원망했습니다. 그 포커스는 선수보다 한국 축구 시스템에 가 닿았습니다. 축구 마니아들에게만 오르내리던 이야기들이 갑작스레 주목을 받았습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잊혀질 디테일한 것들이 모든 대화의 중심에 놓이고 있습니다. 4년마다 폭풍을 일으키는 월드컵, 거기서 어떤 감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공동체 의식 키우는 밧줄놀이
공동체 의식을 체험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밧줄놀이가 있습니다. 참가자가 10여 명이 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지름 5미터 정도 거리로 해서 둥글게 섭니다. 참가자들이 밧줄을 잡고 몸을 뒤로 젖힙니다. 밧줄 당기는 힘을 조절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이 너무 강하게 잡거나 너무 약하게 잡으면 균형이 깨져 모두가 땅에 쓰러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지름을 점점 좁힙니다. 서로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마지막에는 얼굴을 맞댈 정도입니다. 쭈그려 앉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서야 합니다. 이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바탕은 무엇일까요?

미안하고 고마웠다
독일을 이긴 대한민국 선수들은 한동안 운동장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찾아가 격려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독일을 이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16강에 오르지 못한 통한의 눈물이었습니다. 2대0으로 이기면 16강 진출 희망이 있다는 계산을 갖고 죽도록 뛰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멕시코가 스웨덴에 3대0으로 지는 바람에 16강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 그때 사람이 주로 하는 것이 감정의 격한 표출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에게서 우리는 남다른 점을 보았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수들이 자연스레 둥글게 모여 서로 어깨를 걸었습니다. 운동장 잔디를 보며 서로를 느끼며 어떤 교감들을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거기서 우리는 작은 공동체의 끈끈함을 보았습니다. 그 원 안에는 감사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해 줘 감사합니다.”
독일전에서 골을 넣은 김영권 선수의 말입니다.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월드컵에서 부담감은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부담감을 선수들이 나눠 가져준 데 대해서 고마웠습니다. 제가 그 역할을 잘 못 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멕시코전과 독일전에서 연속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의 말입니다.
두 선수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 듣지 못해서 그렇지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밧줄놀이를 해내는 그들일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느끼는 것이 감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멕시코에 부는 ‘땡큐 코리아!’

 

멕시코 축구팬들이 주 멕시코 한국대사관 한병진 공사를 목마 태우는 모습(왼쪽)과 맥주 선물과 함께 온 편지글(오른쪽)에서 월드컵이 준 가장 큰 선물은 감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멕시코가 우리에게 감사를
모든 스포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숫자가 말해줍니다. 기록 혹은 승패를 나누는 점수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기 시작하면 다른 색깔의 유니폼은 다 적입니다.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팀을 응원하려면 무조건 상대 팀의 선방을 깎아내려야 합니다. 즉 승리만이 기쁨을 가져다주기에 패배는 용서가 안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감사의 고수라고 해도 그 순간만은 감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한민국의 활약으로 16강에 오르게 된 멕시코는 분명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멕시코전을 보면서 멕시코를 무지 원망했고, 우리 선수들을 무지 지탄했습니다. 우리 덕분에 16강에 오른 것을 보고는 더더욱 그 원망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이때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멕시코가 대한민국에 뜨겁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합뉴스가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수도 멕시코시티 폴랑코에 있는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는 이날 경기 직후 수백 명의 멕시코 응원단이 한국과 멕시코 국기를 들고 몰려와 ‘totdo somoso corea(우리 모두는 한국인)’, ‘corea hermano ya eres mexicano(한국 형제들 당신들은 이미 멕시코 사람)’라고 외치며 감사 인사를 외쳐댔다. 이 때문에 한때 대사관 업무가 마비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감사거리는 이런 게 아닐까요? 멕시코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 멕시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온다는 것 말입니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쓴 ‘단속사회’를 보면, 대략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남을 봐서 내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보면서 내가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다가오는 말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면서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 아닐까요? 그 느낌의 정도에서 남이 나를 보는 게 더 강하다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볼 때 전 국민이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뛰어야 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스웨덴, 멕시코에 연이어 패배했으니 그 절망감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뭔가를 위해 다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국민들입니다.
“독일이 세계 1위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하자. 국민 생각하면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위기마다 잘 막아준 조현우 골키퍼의 말입니다.
조현우 선수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은 국민들을 절실히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치도록 뛴 원동력일 것입니다. 이런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결과를 못 가져왔고, 부족했던 건 압니다. 그렇지만 밤마다 새벽마다 저희를 응원해준 국민들 덕분에 마지막 경기에서 잘할 수 있었습니다. 축구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드린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응원해준 국민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국민들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상에 지쳐 존재감이 약해져 있는데 그토록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감이 올라갔다는 것을요.
감사의 궁극적인 단계는 범사감사입니다. 매사에 깨어 있어 매사에 다가오는 그 어떤 다양한 일에도 감사를 표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16강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그 세 번의 경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깊이 각인했을 것입니다. 눈을 단 한순간도 경기에서 떼지 않는 몰입 속에서, 탄식에서, 환호에서 우리의 감각세포가 폭풍처럼 일었기 때문입니다. 더 열심히 살려는 몸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힘차게 뛰는 월드컵 경기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뛰는 선수들에게도, 보는 우리들에게도, 그 연결은 감사임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대한민국 선수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16강 탈락에서 찾은 감사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16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감사할 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기자가 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이 왔습니다.
“1. 앞으로 남은 경기 편하게 즐길 수 있어 감사합니다.
2. 밤새 응원하지 않아도 돼 생업에 매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3. 수험생, 고시생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4. 야밤에 치맥 안 먹어 살 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5. 조현우라는 골키퍼를 재발견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축구를 보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짜증을 냈습니다.
“저 놈의 축구는 언제 끝나나? 연속극은 언제 하나?”
사실 그렇습니다. 월드컵 경기를 안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축구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누가 이기든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 승패를 가르는 경기 규칙을 싫어하는 사람들, 그 외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치킨집 사장님과 맥주 회사는 “야밤에 치맥 안 먹어 살 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감사를 꺼릴지도 모릅니다. 16강, 8강, 4강까지 가게 되면 매상은 급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한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흐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불리하게만 흐르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상은 적절히 균형을 맞추며 만들어집니다. 그 모든 일상에 감사한다는 것, 범사감사 혹은 매사감사, 그 감사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힘차게 드리블(dribble)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