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네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고 모든 것이 뇌 탓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이 뇌의 작용에 의하여 일어나는 결과라는 뜻이다.

감사강의만이 아니라 모든 강의나 책에 대한 청중이나 독자들의 반응이 일정하지는 않다. 물론 아주 좋은 강의일 경우, 청중들과 호흡이 잘 맞았을 경우 모두가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할 때도 있다. 이때의 기분은 강사로서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된다. 그리고 좋은 책의 경우는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참석 대상자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채 20대의 군장병들에게 감사로 애들 공부 잘하는 법을 강의해서는 별로 호응도가 좋지 않다. 이렇게 모든 강의는 어떤 대상자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호응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사람에 따라 반응은 다양하다. 지난 2천500년 동안 동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이 논어가 아닌가 한다. 송나라 유학자 이정자(二程子)는 형 정호(程顥)와 동생 정이(程頤)를 일컫는 말이다. 그 가운데 동생인 정이는 17~18세부터 논어를 읽었다며 논어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논어를 다 읽은 뒤에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全然無事者), 
둘째는 논어 가운데 한두 구절을 터득하고 기뻐하는 사람(其中得一兩句喜者), 
세 번째는 앎을 좋아하는 사람(知好之者), 
네 번째는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사람(直有不知 手之舞之足之蹈之者)등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위의 분류에 따르면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하여 국문학 교수가 글을 계속 쓰려면 논어를 읽으라고 해서 여름방학 동안 논어와 씨름했다. 그리고 군에 입대했다가 복학한 후인 1970년 가을에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경제사상’ 논문을 써서 학내 논문집에 게재를 했다. 논어를 읽은 후에 네 번째 부류처럼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세 번째 부류처럼 논어가 나에게 지적 즐거움을 준 것은 확실하다. 

강의를 듣던 책을 읽든 위의 네 가지 부류의 사람이 생기는 것은 앞에서 본대로 우리 우뇌의 전두엽의 작용에 따라서 나누어지는 현상이다. 

아무리 옆에서 좋다고 해도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감사강의를 듣고 5감사 쓰기를 해보라고 해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의 분들은 얼마쯤 실천을 하다가 흐지부지하고 만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꾸준히 실천한다. 그리고 아주 드물기는 해도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도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다고 추천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감사경영을 기업에 도입하는 경우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강요하지 말고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이 우뇌가 따라 오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강요할 경우 이런 분들은 감사쓰기를 갑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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