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 감사 - 신과함께:인과 연

 

대부분의 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되는 시대에 상상의 세계를 다룬 ‘신과함께’ 두 편 모두 천만 관객을 넘었다는 것,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티벳 사자의 서’를 비롯해 사후 세계를 말하는 이야기들이 상당하지만, 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심지어 신앙심 깊은 사람들조차도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한 언급은 자제한다. 과학 발달 이전에는 상상의 그림을 현실처럼 여기며 과감히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과학이 바꾼 가치관일 것이다. 

‘신과함께’에서는 오랫동안 구전되어온 저승의 세계가 그려진다. 현실에서 본 적이 없는 배경인데도 친숙하게 빨려든다. 비현실을 담고 있는 CG(Computer Graphic)에 익숙한 것도 있고, 그곳의 질서도 이승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리 전개가 빠른 가운데 인간의 근본 도덕인 효와 용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과학이 틈입할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도의 불교사상가인 나가르주나가 남긴 ‘중론송’이라는 책이 있다. 필사까지 해가며 공부해봤지만 그 깊이는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책이 왜 ‘신과함께’를 보고 나서 떠올랐을까?

‘중론송’의 핵심은 이런 것 같다. 모든 사물에는 자성(自性,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못 보기 때문에 집착과 번뇌에 사로잡힌다. 이 논리를 나가르주나는 반박한다. 모든 사물에는 자성이 없고, 상호인대(相互因待)로 만들어지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물은 고유성이 없고 섞이고 스미면서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신과함께’에 등장하는 인물은 딱 세 부류이다. 죽은 자와 산 자, 그들을 관리 심판하는 저승의 존재들이다. 죽은 자는 죽은 자대로, 산 자는 산 자대로, 차사는 차사들대로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상황은 여지없이 깨진다. 그가 그가 아니었고, 그는 다른 그 무엇이었다. 그의 삶에 대한 기나긴 역사성을 모르고 본 편견이 얼마나 부박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순간 감동은 증폭된다. 우리의 삶이 그 길고긴 역사의 공간으로, 상상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현재의 관계들이 잘못된 허상일 수도 있다는 통렬한 반성이 일어난다. 즉 모든 관계는 상호인대(서로 인연을 맺으며 기대며 만들어가는 시공을 초월한 모습들)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본 ‘신과함께’에서 어떤 감사거리를 찾았을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삶이 긴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서 감사하고, 현상(현재의 모습)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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