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CO와 박태준 회장에게 감사를 (9)

 

일본이 껄끄럽게 나오면 꾸물댈 여유도 이유도 없이 일본을 빼버리고서 서방 선진국들의 손만 잡아도 얼마든지 종합제철을 건설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제기획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틀리지 않아 보였다. ‘베서머 제강법’이 증명하듯 영국은 산업혁명의 본거지답게 철강기술의 발전을 이끌어온 나라이고, 1966년에는 제철기술이나 조강능력에서 미국은 가장 앞서는 나라였다. 

그러니 일본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엉덩이를 뺀다고 해서 한국이 매달려야 하겠는가. 그때 국민 정서나 감정으로는 더욱 그랬다.

일본은 어떻게 보았을까? 일본 경제기획청 관료들은 한마디로 국제 컨소시엄으로는 위험한 프로젝트라고 판단했다. ‘고로는 이탈리아, 전로(轉爐)는 독일, 압연은 오스트리아, 미국 등 제 각각의 기술과 설비가 개별적으로는 우수할지 모르지만 컨소시엄 형태로는 일관적인 기술 체계를 필요로 하는 종합제철소에서는 위험한 구상이다.’ 이 판단에 근거해 그들은 한국 종합제철 건설에 참여하려는 후지제철과 야와타제철 경영층에 부정적 의사를 전달하고 한국 경제기획원에 불참의사를 통보했다. 

그런데 세상의 인연은 기묘한 데가 있다. 그 불참판단을 결정한 아키자와 쇼이치가 불과 3년 뒤에 ‘한국 영일만’에 타당성 조사를 하러 왔다가 그만 박태준에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 관료들이 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해 백인들과 접촉하여 일차적 중대 결과물인 KISA를 꾸려내는 동안에 박정희의 밀명을 받은 박태준은 도쿄 출장을 가는 기회마다 종합제철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철강 전문가들과 만나곤 했다. 이 시기에 그가 소중한 도움을 받은 재일동포 두 사람이 있었다. 김철우 박사와 롯데 사장 신격호였다.

1965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박태준은 대한중석 도쿄 주재원인 주영석에게 특별 지시를 내렸다.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김철우 박사를 모셔 오라.’

1926년 일본에서 태어난 김철우, 아버지는 경남 의령, 어머니는 합천이 고향이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부모 슬하에서 김철우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금속학도의 길을 택해 도쿄공업대학, 도쿄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첫 봉급이 1만2000엔이었다는 것을 늘 잊지 못한다.

김철우는 한국에서 왔다는 어떤 사장이 만나자고 하는 느닷없는 제안을 받고 조금은 긴장한 마음가짐으로 도쿄의 고급호텔 레스토랑으로 나갔다. 당시 그의 봉급으로는 출입하기 어려운 레스토랑이었다. 박태준과 김철우의 첫 만남, 김철우의 한국말이 어눌해서 일본말도 유창한 박태준이 일본말을 써야 했다.

 

 

10감사

1. 한 곳만 기댈 필요가 없이 다각적으로 뚫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일 추진 시 관련 업종에 대한 각 나라의 특징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3.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4. 눈앞에서 불참판단을 했다고 파트너에서 제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 일 추진 시 물밑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6. 궁하면 도움을 줄 구원 투수가 나타난다는 것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7. 고국을 떠난 사람이 해외에서 우수한 인재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8. 어떤 일이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다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9. 일 추진 시 부침이 있어도 초지일관 목표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10.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만나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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