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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무한한 사랑 감사합니다전(前) 고려대학교 총장 이기수님이 쓴 어머니께 50감사
  • 감사나눔신문
  • 승인 2018.12.03 13:53
  • 호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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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전 총장은 새벽 3시면 일어나 돌아가신어머니 사진을 보며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한다. 아들의 가슴 속에 들어가 있는 어머니(앞줄).

1.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산고를 겪은 엄마께 감사합니다.
2. 오른쪽 볼에 보조개를 물려주셔서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밝은 인상을 유전시켜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 저에게 건강한 신체를 가지도록 모유를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4.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4살 아래 남동생과 저를 홀로 키워주셨음에 감사합니다.
5. 모내기나 추수할 때에 일손이 필요하여 주변 마을의 일꾼들이 와서 도와줄 때에는 그들에게 막걸리를 주기 전에 새벽 4시에 저를 깨워 “대주님께서 먼저 술 맛을 보아야 일꾼에게 주지” 하시면서 저에게 그 나이에 술을 배우게 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6. 좋은 술 습관으로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도록 길러주셨음에 감사합니다.
7. 살아생전에 저에게 한번도 “안 돼”라고 부정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아 감사합니다.
8. 어린 아들을 한 인격체로 대하시고 존중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9. 장가를 들고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 고향집에 들렀을 때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의 젖무덤을 만지면서 “잘 주무세요”라고 취침인사를 하도록 사랑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10. 11살이 되어 고향인 경남 하동군 횡천면 횡천초등학교에서 5학년을 마치고 6학년에 진학할 때에 진주 배영초등학교로 전학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1. 진주에서 배영초등학교 뒷문 바로 곁에 위치한 하동군 청암 면장을 지내신 분의 댁에서 하숙생활을 하도록 주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진주에서 초등학교 1년과 진주중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매월 마지막 주말에 횡천 집으로 가서 월요일 새벽 4시 30분에 진주행 버스를 탈 때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셔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있는 배추국밥을 끓여주셨음에 감사합니다.
13. 버스를 타는 정류장까지 1km를 함께 걸으시면서 교육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14. 겨울에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청암면에서 횡천면으로 내려오는 횡천강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탈 때에 “얼음 속 숨구멍에 빠지면 다시 물위로 솟아날 수 없다”시면서 3km거리를 달려와서 스케이트를 못 타게 말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15. 진주와 부산에 유학 중에 방학을 맞아 고향집에 들렀을 때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횡천 집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 후에 친구들과 함께 마을 동산에서 씨름하고 놀다가 소를 몰고 뒷산을 돌아 오후 해 질 때까지 산을 타고 놀다가 귀가하는 “소 풀먹이기(소는 한방향으로 풀을 뜯어 먹으면서 가는 습관을 지녔음)”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6. 유학 중에 방학을 맞아 집에 머무르는 기간에는 집 앞과 뒷산 그리고 3km 떨어진 청암 가는 횡천강의 오른쪽에 위치한 우리 소유의 산들을 4시간씩 산책하면서 귀한 말씀들을 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17.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니도록 허락해 주셨음에 감사하며, 1차를 낙방하고 2차로 동아고등학교에 진학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8. 부산시 보수동에서 건축업을 하시는 사촌형님 댁에서 3남 2녀의 조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하숙하도록 선처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19.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철학교수가 되겠다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발견되는 철학서적을 탐독하도록 저에게 자유를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20. 대학입시 준비가 미흡하여 대학입학시험에 낙방하고 서울에서 재수를 하도록 뒷바라지 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21.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였다고 행복해 하시던 모습에 감사합니다.
22. 4년간의 대학생활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뒷바라지 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23. 돈이 필요할 때에 “일정금액 송금요”의 전보를 받으시고는 “돈이 필요할 때에 전보 좀 치지 마라. 무슨 변고라도 있는가 하여 가슴이 철렁한다.”라고 말씀주신 그 깊은 사랑에 감사합니다.
24. 대학교 3학년 2학기에 만난 지금의 처 조효임과의 사귐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5. 효임이가 횡천 집에 놀러왔을 때에 “나의 아들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나도 며느리를 사랑하겠다”면서 저를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효임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6. 196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에 대전에 있는 효임 집에 놀러갔다가 “사주에 1970년 1월 10일에 혼인하면 장래가 길하다고 하니, 그 날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장모님께서 말씀하셔서 보름 후인 “1월 10일에 결혼하니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렸음에도 “좋은 결정했다”고 행복해 하셨음에 감사합니다.

27. 보름 후인 1970년 1월 10일 대전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도 하동, 진주, 부산, 서울의 일가친척들이 다 와서 축하해주도록 큰 포용의 힘을 발휘하셨음에 감사합니다.
28. 대전에서 1박하고, 부산에서 1박, 진주에서 1박하고 1월 13일에 횡천집에서 시골 풍습으로 결혼식을 거행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29. 진주에서 순천으로 이어지는 지방 국도 1번에서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35번지의 저의 본가로 들어가는 교량을 새로 단장하여 저희 신혼 부부가 처음으로 그 교량을 넘도록 배려하여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0. 가마를 마련하여 신부인 효임이 자동차 길에서 집까지 1km정도 가마를 타고 집까지 갈 수 있도록 신경써주신 깊은 며느리 사랑에 감사합니다.
31. 고려대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방 2칸을 얻어서 신혼살림을 차려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2.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전공하여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뒷바라지 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3. 효임이가 서울대 음대 3학년을 마치고 시집을 와서 4학년 1년간의 등록금을 마련하여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4. 아들 병준이 태어났을 때에 손자를 얻으셨다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에 감사합니다.
35. 아들 데리고 공부하기 어렵다고 횡천 집에서 데리고 있던 여자아이를 집안일을 돕도록 서울 집으로 보내시어 일손을 보태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6. 전세방 2개 중 한 방에 바둑판을 비치해 놓고 저의 친구들이 놀러 와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하는 등 저의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소비되는 쌀은 횡천에서 농사를 지으니 걱정말라고 하시면서 쌀을 계속 서울로 올려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7. 대학교 3학년에 바둑을 배우게 되어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72년 9월 1일부터 육군사관학교 법학과에서 육군사관학교 30기부터 34기까지 가르칠 때에 1973년 봄에 바둑 1급 실력을 갖출 때까지 바둑에 미쳐있었던 저를 사랑으로 항상 감싸 안아주셨음에 감사합니다.
38. 1972년 5월 5일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6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교육을 받고 광주 보병학교에서 10주간의 장교임관을 위한 훈련을 받는 중에 1972년 8월 19일에 수진이 태어날 때까지 마지막 3주간을 광주에서 하동 횡천 집까지 왔다가는 아들을 항상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던 엄마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39. 1972년에 딸 수진이 태어나자 식구가 많아졌다면서 시골의 논을 팔아서 대치동에 새 집을 사주시어 새 보금자리를 갖게 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40.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임강사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동안 1974년 3월에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전 과정을 수료하는 3년 동안 등록금 등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1. 육군사관학교 교관(중위 임관 2년 후 대위 임관 1년)으로서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예편하여 고려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지낸 75년 9월부터 77년 9월까지 양식을 보내주시고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42. 1976년 가을에 접어들어 독일의 콘라드아데나워재단에서 시행하는 독일 유학 장학생 선발에 합격하였을 때에 서울 우리 집에 와 계셨던 엄마의 행복해 하신 모습에 감사합니다.
43. 독일 유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효임과 병준, 수진의 비행기 표값과 독일 유학생활을 위한 필요자금 마련을 위하여 엄마께서 사주신 주택을 매매하고 그 대금으로 1997년 9월부터 1983년 8월말까지 만 6년간의 독일유학을 온 가족이 다녀오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4. 엄마는 살아생전에 마을에서 논에 물 대기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중재하는 해결사 역할을 여성으로서 거뜬히 해 내시어 저의 삶에 큰 교훈을 주셨기에 오늘에 와서 제가 대한중재인협회장이 될 수 있는 심성과 역량을 키워주신 엄마의 통큰 배포에 감사드립니다.
45. 엄마는 우리 집에 들리는 손님은, 초대받았던 손님이건, 그냥 들리시던 손님이든 관계치 아니하시고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언제나 식사대접하고, 정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이라도 드시게 하는 성품을 가지셔서 포용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박애정신을 저에게 가르쳐주시어 저의 심성을 맑게 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46. 엄마는 내의가 오래되어 찢어진 곳을 기워서 입으시는 절약정신을 몸소 실천하시어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셨음에 감사합니다.
47. 엄마는 “통큰 여성”이셨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일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저를 보고 사람들이 “이 교수는 남의 욕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심성은 엄마의 마음가짐에서 제가 배운 것이라 생각되어 엄마의 몸소 실천하신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48. 아버지와 엄마는 농부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많은 농토를 물려주셔서 경제적으로 큰 부족함없이 살 수 있는 부를 남겨주셨고, 어머니께서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시는 분이셨지만, “거짓말 하지 말라”, “사기치지 말라”는 말씀으로 사람 사는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실천하는 자세로 우리 형제를 키워주셨음에 감사합니다.
49. 엄마는 제가 독일로 유학가기 전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유학 가는 저의 마음에 엄마와의 작별인사를 나누고서 1977년에 유학을 갔고 1979년에 만60세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나의 서재에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고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수학한 것, 법대 교수라는 직업을 택한 것 등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에 언제나 그 중심에 계셨고, 저의 마음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엄마께 나의 모든 마음을 다 바쳐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면 엄마는 그대로 내 가슴 속에 와 계셔 주셔서 엄마를 품은 행복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50. 대한민국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엄마가 저를 낳으시고 키우시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헌법 제10조)으로서 또한 인격을 가진 한 인간(민법 제3조)으로 저를 성장시켜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오늘의 이기수가 있도록 사랑으로 돌봐주신 엄마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해”


아들 이 기 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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