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나눔 교육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100감사 쓰기 시간에 항상 참가자들과 함께 100감사를 쓰는 감사나눔신문 김용환 대표.

100(百)의 의미는 완성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3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대표적인 나라라는 수식이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옛날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고, 체벌이 있었던 이야기도 역시 먼 나라 풍경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빨리빨리 습득해내는 대한민국 사람들, 왜 그런 기질을 갖고 있을까요? 교역의 통로인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 하필이면 그 양 옆의 나라가 강대국이라는 점 등 여러 상황들이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생존하려는 은근과 끈기의 정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는 생존을 상징하는 특별한 숫자 문화가 있었습니다. ‘100(百)’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100일이 되었을 때 아무 탈이 없으면 백일잔치를 열어 태어남을 축복하고 무병장수를 빌어줍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거나,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면 백일기도를 합니다. 이런 문화는 설화에도 있습니다. 마늘과 쑥을 먹은 곰도 100일이 되어서 사람이 되었고, 이무기도 100일이 되어야 용으로 승천했고, 여우도 100년은 묵어야 사람이 되었습니다. 
100(百)의 순수 우리말은 ‘온’입니다. 이는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 단계 완성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입니다. 물이 100도에서 끓으면 완전히 성질이 다른 기체가 되듯이 말입니다. 

생존이 만든 100감사
감사를 표현하고 쓰는 문화는 미국에서 발달되었지만, 매일 3감사 이상을 쓰거나 감사 일기를 쓰는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감사의 본고장에서 감사 쓰기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100감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전광 목사가 쓴 ‘감사가 내 인생의 답이다’에 소개된 ‘100감사 창안자 안남웅 편’을 잠시 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억지로 100감사를 채우고 있는데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억지로 쓰기는 했지만 왕 언니의 좋은 면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문득 ‘이 사람도 나름 괜찮은 면이 있는데 왜 그렇게 미워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겁니다. 순간 안 목사는 자신의 눈에 ‘미움이라는 안경’이 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감사의 시작은 결국 ‘생존 감사’에서 출발했습니다. 쉽게 말해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감사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슴에서 진정성 있는 감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새벽이 되어서야 그것도 머리를 쥐어짜서 100감사를 완성했습니다.”
이후 안 목사의 100감사는 100일 이상 이어지기도 했고, 100감사로 달라진 그의 삶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를 통해 100감사를 배우고는 많은 사람들이 실천에 옮겼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꼭 100감사, 100일이어야 했을까요?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 기질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랬다면 답이 될까요?

 

“옥시토신 레벨을 최고로 올리는 100감사”
 

지난 2017년 포스코 설비자재구매실 임직원들이 업무 100감사를 쓰고는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100감사는 다양한 영역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100감사가 준 성장
100감사 쓰기는 감사나눔 교육에서 실제로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국내에서 시작된 100감사, 그 매력은 어디에 있는지 몇몇 분에게 물었습니다.
송미희 경기도 시흥시의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2012년 9월 24일 감사를 처음 만났고, 2013년 1일 5감사를, 그 다음해에 1일 10감사를 일 년 동안 실천했습니다. 내친김에 2015년에 1년 365일 동안 1일 백감사를 진행하며 제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습니다. 두 아이들을 키울 때 지난여름에 입었던 옷을 올 여름에 꺼내어 입혀보면 팔 길이가 턱없이 짧아진 것을 보면서 많이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단지 아이들이 몸만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의 크기도 함께 성장했을 것입니다. 1일 5감사, 10감사, 백감사를 실천하며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바로 성장에 대한 의미였습니다.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뒤로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감사강의를 진행하는 감사운동가로서 성장하지 않으면, 감사에너지를 충전하기 어렵고, 충전되지 않은 감사에너지로는 누군가에게 강의를 통해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1일 백감사는 바로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며 성장의 촉매제라고 여겼습니다. 백감사를 실천하면서 도무지 말이나 글로는 다 형용하기 어려운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매순간마다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귀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송미희 의원은 감사에서 성장의 의미를 찾아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 성장의 중요한 호르몬이 바로 백감사입니다.”

매슬로우 8단계가 100감사
김덕호 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은 100감사 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쓰기를 지속해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를 써보니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많은 것들이 모두 감사할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은 바로 관심과 관찰에 있습니다. 100감사는 이와 같은 감사쓰기의 효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몰입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한 가지 대상을 향해 100개의 감사를 쓰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하게 긍정적인 기억을 찾고 길어 올리는 몰입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를 통해 그동안 상대에 대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더 많은 감사를 발견하게 합니다.”
100감사가 성장을 가져다주었고, 100감사를 쓰는 동안 몰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100감사는 우리 인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과학 이론에 입각해 감사를 연구 실천하는 제갈정웅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100감사 쓰기의 필요성과 효과를 3단계로 나누어서 경험하였다.
1단계는 내가 100감사를 어떤 대상에 대하여 완성했을 때 나에게 일어나는 느낌의 단계이다.
100감사 쓰기는 그 대상에게 집중적으로 짧은 시간에 씀으로써 뇌 속의 옥시토신 레벨을 최고로 끌어올려서 뇌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새 차를 사면 고속도로가 붐비지 않는 시간에 일정 시간 동안 고속으로 달려서 새 자동차에게 ‘너는 150km, 180km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과 같다.
2단계는 상대의 반응 단계이다.
100감사를 읽어드렸을 때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 2단계의 첫 부분으로서 그 공간에 함께 했던 모두에게 감사에너지가 전달되는 단계이다. 2단계 후반부는 나의 100감사를 받은 대상이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읽으며 뇌속의 옥시토신 레벨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고객에게는 100감사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단계이다.
3단계는 100감사를 받아보는 단계이다.
100감사를 받아보지 않으면 100감사 쓰기가 필요한 이유를 반만 알게 된다. 100감사 쓰기가 필요한 이유를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100감사를 받았을 때 그리고 그후 오랜 시간을 두고 100감사를 주고받은 대상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긍정성 향상을 경험해야 100감사 쓰기의 필요성과 효과를 완전히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들에게 100감사를 받은 경험은 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요약하면 100감사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뇌속에 있는 옥시토신 레벨이 최고로 올라가 오랫동안 우리 신체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제갈 이사장은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8단계의 가장 높은 경지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100감사쓰기의 필요성과 효과”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자
감사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5감사 쓰기도 힘들어 합니다. 뭉뚱그려 감사하면 되는 것이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감사를 한다는 것은 그릇이 좁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성장하고’ ‘몰입하고’ ‘인간 욕구의 가장 높은 단계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분기점이 바로 100감사 쓰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00감사, 1000감사 쓰기로 암을 치료하는 등 어려움을 이겨낸 오숙경 시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몇 달을 약을 먹어봤지만 불면증은 여전했고 생각은 극에 치달아 자꾸만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처방받은 약을 버리고 그동안 소홀했던 감사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어제와 다름없는 똑같은 하루였지만 감사한 일들을 찾아 쓰다 보니 우울했던 마음도 점차 사라지고 움츠렸던 자존감도 높아지며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100감사 쓰기의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100감사는 단순한 100가지 감사가 아니라 한 단계의 완성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이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유문화입니다. 하지만 상징 숫자만 다를 뿐 ‘성장, 몰입, 도약, 완성’을 의미하는 숫자는 어느 나라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순간 이어지는 일 자체가 완성이고, 이를 위해 ‘범사에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감사는 인생 행복의 신비한 언어”라며 ‘범사 감사’를 실천하고 계신 이기재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5감사, 100감사, 2000감사를 쓰고 보니 글자로 적고 감사를 입에 달고 살 때 감사체질로 변함을 배웠다. 날마다 5감사 이상을 적고 있다. 감사 인생으로 사는 자에게는 살아볼 만한 삶이 아닐까?”
감사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은 분들, 감사 에너지가 떨어질 때마다 100감사 쓰기로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면 어떨까요? 100은 단순히 백(百)이 아니라 ‘전부’ ‘모두’를 뜻하는 ‘온’이니까요. ‘온’은 ‘범사’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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