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일 의학박사의 건강이야기

감기라는 것은 원래 동양의학적인 술어이다.  감염성(感染性)이 있는 기(氣)라는 뜻에서 감기(感氣)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보편화된 말이기 때문에 서양 의학계에서도 그대로 감기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감기를 컴몬 콜드(common cold)라고 부른다. 반드시 추울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닌데, 주로 추운 것(cold)과 관계되는 병이고 또 너무나 흔하게(common)생긴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감기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그냥 놔두어도 앓을 만큼 앓고는 저절로 낫는 게 감기이다. 그래서 “감기는 의사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만이 그 치료법을 알고 있는 병이다” 라던가 “감기는 의사의 처방이나 지시를 따르면 한 일주일이면 낫고, 또 아무런 치료를 안 받아도 칠일이면 낫는 병이다”라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이다.

그러나 “감기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무리한 행동을 취하거나, 무시하면서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평범한 감기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폐렴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유발되기도 하고, 때로는 심각하고 중한 병이 마치 감기처럼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감기 자체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한 병도 아니고, 무슨 뾰족한 치료법이 있는 것 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마치 중병을 앓기 시작한 사람처럼 자신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감기가 왜 생기고 또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해서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사이에 견해가 다르고 이론적 바탕도 다소 다르다. 동양의학에선 기(氣)에 대한 이론이 그 설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우리 몸의 생리를 관장하는 기는 그 기능의 성격에 따라 영기(榮氣)와 위기(衛氣)로 구분한다. 영기는 인체 내부에서 장기의 영양과 신진대사를 관장하며, 위기는 주로 체표에 머물면서 외부로부터 몸을 향해 쳐들어오는 나쁜 기(邪氣)를 막아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기(衛氣)는 또한 자고 깨는 수면 각성, 근육의 긴장도, 체표의 온도 등을 조절한다. 위기는 낮에는 체표의 가장 바깥쪽에 머물면서 활동하고 밤에는 비교적 안쪽으로 스며드는 주기적 율동, 다시 말해서 일일 리듬(diurnal rhythm)을 갖고 있다. 위기가 낮에는 체표에 나와 있으므로, 사람의 의식은 깨어 있고, 근육은 긴장되어 있으며, 체온은 올라가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밤에는 이와 반대로 위기가 안으로 들어감으로, 의식은 수면 상태로 되고, 근육의 긴장도는 떨어져 몸이 축 늘어지는 상태가 되며, 체온은 떨어지게 된다.

가령 무슨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비를 흠뻑 맞고 어떤 썰렁하고 추운 방에서 같이 머물게 되었다고 하자. 이런 상황 하에서 그냥 잠들어 버린 사람들이 자지 않고 깬 상태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보다 감기에 더 잘 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목욕하고 그냥 자는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이  “머리도 안 말리고 자면 감기 걸릴라” 하고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잘 때는 위기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방어 능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때를 놓지 지 않고 쳐들어오는 사기를 막아내지 못하여 감기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염증으로 본다. 너무나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관여하기 때문에 면역의 효과도 없다. 거의 매번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침범함으로 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성을 키울 수도 없고, 다음번에는 어떤 바이러스가 찾아와서 괴롭힐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어떤 예방주사를 맞아야 될지도 알 수가 없다. 바이러스가 코의 점막에 정착하여 번식하기 시작하면 우리 몸은 이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하여 백혈구와 같은 방위병을 동원하게 되고, 따라서 코의 점막은 이들의 전투장으로 화해 버리고, 이 전쟁 때문에 그 부위의 조직은 붓고, 아프고, 점액이 분비되고, 뻘겋게 충혈이 되고, 열이 난다.  이것이 염증이다. 점액이 많이 분비되니까 콧물이 나고, 조직이 부으니까 코가 막히고, 비정상적으로 점막을 자극하니까 재채기가 난다. 이러한 염증이 코에 머물러 있으면 “코감기”, 목구멍에 생기면 “목감기”, 기관지로 내려가면 “기관지염”, 폐로 퍼지면 “폐렴”이 되는 것이다. 기관지염이나 폐렴 등의 합병증은 물론 항생제 투여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합병증이 없는 단순한 감기에 자연 치유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또는 나쁜 기(邪氣)를 몰아내는 좋은 기(正氣)를 축적하기 위하여 심신의 휴식을 취한다던가, 열이나 점액의 다량 분비나 설사 등으로 생기는 탈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던가 하는 치료법에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동양의학에서는 감기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였는가 하면 서양의학에서는 감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설명의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동양의학, 서양의학, 대체의학에서 추려 낸 감기 다스리기에 대한 지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감기가 찾아오시면 귀한 손님처럼 잘 모시라”는 것이다. “감기님 오셨습니까” 하는 기분으로 따스한 방에서 모시고, 탈수가 되지 않게 따끈한 차를 자주 대접해 드리며, 마음을 편안히 갖고 며칠간 푹 쉬시게 하면 “잘 쉬었다 가노라”하고 곧 떠나 갈 것인데, 만일  억지로 몰아내려 하면 감기는 발버둥 치면서 더 안 나간다는 것이다.
감기에 대한 옛 어른들의 가르침에 일리가 있다. 감기는 아예 없애 버리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관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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