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나는 경북 성주의 농촌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회에 나가서는 꽤 높은 봉급을 받는 회사원으로 일을 했는데 줄줄이 딸린 동생들 뒷바라지에 허덕이다가 도저히 내 월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내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48년간 기업인으로 살아오며 석탑훈장, 국무총리상 등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증거라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낀다.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은 언제였을까 헤아려 보니, 인생의 굽이굽이 마다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고 감사할 이들은 넘친다. 그중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1982년 일본 출장길에 호텔에 묵었는데 뜻하지 않게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결국 수십 명이 사망한 참사의 현장이었다. 그때 나는 10층에 묵었는데 사방이 화염에 휩싸여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불에 타죽는 것보다는 투신으로 사망하는 게 낫겠다 싶어 창을 깨고 난간에 올라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옆방에 묵었던 부부가 뛰어내려 즉사하는 걸 목격하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이 불길을 뚫고 살려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곤 난간에 매달린 채 의자를 들어 옆방 유리창을 차례로 깨가며 이동하여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죽을 목숨을 구한 것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을까? 

억울하고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33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일이 있었다. 그때 소위 말하는 ‘감방 고참‘ 중에 유난히 나를 괴롭히던 이가 있었다. 7명이 생활하는 감방 안에서 그의 코고는 소리는 너무 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밤에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시끄럽다며 모질게 욕을 해대곤 했다. 나는 그를 통해 반면교사를 배웠으며 나 자신의 교만함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구치소를 나올 때 그에게 글 한 통을 전했다.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말을 잘하기보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내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에게 감사한다.

지난 추석엔 며느리에게 감사 쪽지를 써서 읽어주었다. 해묵은 오해와 앙금이 그 쪽지를 통해 씻겨나가던 순간이었다. 감사를 말하는 내 눈가에도 눈물이 번졌다. 감사의 힘을 새삼 느꼈다. 앞으로는 100감사, 1000감사에도 꼭 도전해 보고자 한다.

 

이중기 동보중공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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