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옥분, 궁색한 무대에서 길어올린 건 감사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아아 /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오오”라는 노래로 80년대 큰 인기를 누린 남궁옥분 씨의 삶에서 지금 우리는 ‘감사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마음이 맑아지는 가수
“Starry, starry night /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 Look out on a summer’s day /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 / 당신의 팔레트를 파랑과 회색으로 물들이고 / 여름날, 밖을 보아요 / 내 영혼의 어둠을 알아보는 그 눈으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이 반 고흐의 불우한 삶을 추모하며 1971년 부른  ‘빈센트(Vincent)’ 앞부분입니다. 영어를 몰라도 노래를 듣다 보면 밤하늘 별들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며 가슴에 콕콕 박히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반 고흐가 남긴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이 선명히 눈앞에 펼쳐집니다. 반 고흐는 이제 없지만 그가 남긴 치열한 예술 정신은 온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습니다.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맑아지는 가수입니다.

 

정말 안 변했어요
“하나도 안 변했어요. 2019년이면 데뷔 40년이 되는데 데뷔 초기의 인상, 이미지, 헤어스타일이 똑같습니다. 특히 맑은 목소리는 정말 안 변했어요. 왜 그동안 나오지 않으셨나요? 무려 23년 만에 이런 토크쇼에 나오신 겁니다.”

지난 2018년 12월 11일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한 남궁옥분 씨를 보고 진행자들이 한 말입니다.

“나올 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한 해 한 해 겸손하게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3초 광고하려고 많은 투자를 하는데, 제가 오랜 시간 나올 자격이 있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남궁옥분 씨의 차분한 대답에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노래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스타의 이후 소식을 시청자가 알 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나와서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날 남궁옥분 씨는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린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등을 불렀고,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많은 시청자들은 오래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동에 젖었습니다.

 

지금도 노래하고 있어요
톱 가수로 기억되는 남궁옥분 씨가 감사나눔신문 안테나에 포착된 계기는 그녀와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전 KBS 아나운서이자 현 차의과대학 교수인 신은경 씨가 건네준 말이었습니다.

“남궁옥분 씨가 감사의 삶을 살고 있어요.”

가수의 감사 인생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현재 두드러진 활동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이왕이면 유명 인사를 실어야 여러 모로 홍보가 될 수 있다는 언론사 속성도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뒤적이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남궁옥분 씨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조건에서 최고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나눔신문 일행이 남궁옥분 씨를 만난 날은 지난 1월 25일이었습니다. 아침마당에서 방부제를 먹지 않았느냐는 김학래 씨의 말처럼 정말로 남궁옥분 씨는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감동적인 감사 스토리가 완성될 수 있겠군.’ 하지만 인터뷰 장소인 이탈리아 음식점 ‘다피타’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앉은 자리 바로 위에 스피커가 있었고, 점심시간이 갓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테이블에서 담소가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인터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시간 뒤에 남궁옥분 씨는 미사리에 가서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땅 끝에 서야 바다가 보인다”며 시련을 감사와 행복으로 발전시킨 남궁옥분 씨의 노래에서 지금 우리는 인생의 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매일이 감사
제갈정웅 이사장이 물었습니다.

“감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남궁옥분 씨는 빠른 속도로 말했습니다.

“매일이 감사합니다. 살아 있는 게 감사합니다. 아침에 커튼을 열면 감사하고, 저녁에 커튼을 닫아도 감사합니다. 바쁠 때 신호등이 잘 바뀌어도 감사하고, 운동하러 나갔는데 날씨가 좋아도 감사합니다. 늘 감사하다 보니 감사할 일만 생깁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그 감사함과 행복함을 밴드에 일기처럼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어 선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감사’, ‘행복’ 등의 말을 주로 적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인터뷰를 더 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감사 인생의 최고 정점인 ‘범사 감사’를 하시는 분께 무슨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할지 몰랐고, 감성 어린 어휘로 이루어진 노랫말로 노래를 하시는 분의 언어 세계가 한정적인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 천천히 판명되었습니다. 남궁옥분 씨는 인터뷰 시간이 짧은 것에 대한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식사를 하지 못한 일행을 배려해 음식 주문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는 듯한 멘트를 먼저 했고, 그녀가 항시 사용하는 ‘감사’, ‘행복’이란 단어는 그녀의 삶속에 녹아든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인터뷰 말미에 알게 되었습니다.

 

미사리에서 밀려드는 행복감
뭐든지 잘하고 싶었고, 어떤 분야든지 1등이 되고 싶었던 남궁옥분 씨는 우연한 기회에 등 떠밀리다시피 가수가 되었습니다. 가수가 된 이상 최고가 되고 싶었고, 빠른 시간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손꼽히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얼굴에 독기가 있었고, 자만심도 강했던 그녀는 어느 날 화려한 방송국이 아니라 한강이 굽이치는 미사리 30평 카페 무대에 앉아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참 초라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들 어려운 아이엠에프 시기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미안함도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고생해서 일궈놓은 곳에 그냥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노래 부를 곳이 있다는 생각,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가득해지면서 어느 순간 뭔가가 들렸습니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습니다. 행복감이었습니다. 내 자리가 여기구나. 그래서 현충일만 빼놓고 매일 미사리에서 노래했습니다. 그때 노래에 대한 감사함을 알았고, 삶에 대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돈에 대한 가치를 깨달았고, 나아가 인생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미사리에서 노래의 참의미를 찾았습니다. 노래는 나의 사명이었습니다.”

 

땅 끝에 서야 바다가 보인다
남궁옥분 씨의 말들은 함축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청아한 목소리였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방(禪房)에서 간간히 들리는 죽비 소리 같았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정신적으로 일찍 성숙했습니다. 능인선원 지광스님으로부터 우주생성원리도 공부했고, 남방불교도 접했고, 기독교와 천주교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세례도 수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 삶의 지향점은 ‘멋지게 살자’이지 딱히 어디에 매여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궁옥분 씨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순간순간 행복함이 가득한 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정주의입니다. 그래서 지금을 살자고 합니다. 사과가 100개 있다고 했을 때 제일 맛있는 사과부터 먹으면 나머지 99개도 맛있습니다.”

이때 남궁옥분 씨가 가장 힘들었다는 아이엠에프 시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최고의 정점에서 다수의 시선을 받던 가수가 음식을 앞에 놓은 소수의 시선들을 향해 노래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진짜 속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땅 끝에 서야 바다가 보이는 법입니다. 큰 시련을 준 것에 감사하며 매일 행복하다고 최면을 걸었습니다. 나한테 있는 것에 만족할 때 행복이 거기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미사리에서 노래할 때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집 생각하시면 집에 있는 게 나아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즐기세요. 그리고 옆 사람 안아주고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그러면서 저도 감사하게 되었고, 거기서 긍정의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감사가 깃든 목소리
남궁옥분 씨가 데뷔 이전 노래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상금 때문이었고, 그 목적은 시계 구입이었습니다. 그 시계의 향방에 대해 묻지는 못했지만, 곧 추억으로만 남을 미사리로 노래를 부르러 가려고 자리를 뜨는 남궁옥분 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시간의 주인공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생전 주목을 받지 못한 반 고흐는 그래도 죽는 날까지 예술혼을 불태웠고, 후세에 영원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정상에 섰던 남궁옥분 씨는 방송에서는 잊혀졌지만 그녀의 노래와 그녀를 찾는 대중들은 여전히 그녀 곁에 머물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남궁옥분 씨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시간을 살기 때문입니다. 스타는 늘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남궁옥분 씨는 자신의 삶에 ‘감사’와 ‘행복’을 깊이 끌어들여 함께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늘 그녀의 머리 위에서 ‘starry starry’(총총한 별빛으로) 빛날 것입니다. 감사가 깃든 그녀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우리를 치유할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면 언젠가 그녀의 자작시가 쓰여 있는 아름다운 선물도 받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이 세상의 중심이며 주인공이십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해도 달도 별도 당신 때문에 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고 또한 빛나는 이유도 당신이 계신 때문입니다. 그러한 당신을 내 감히 사랑합니다. 당신이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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