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상처가 단단한 나무의 나이테처럼 가슴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연대보증으로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몽땅 날린 아버지는 눈만 뜨면 어머니와 싸웠고, 자식의 배를 처절하게 굶주리게 하셨다. 

어떤 때는 사흘 동안 내리 굶고 방바닥에 허기져 누운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12색 크레파스를 사 쓰지 못해, 짝꿍에게 크레파스를 빌려서 그림을 그렸다.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고, 그 콤플렉스로 인하여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림그리기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나의 어린 시절을 아픔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던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하셨다. 그것은 내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또 다른 상처와 한을 남겼다.  

10여 년 전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에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행복나눔125 지도자과정 감사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사할 거리가 없었고,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속에서 이런 속삭임이 들려왔다. “춘식아! 너 언제까지 아버지에 대한 상처의 벽을 안고 그렇게 살래?” 

그래서 이제라도 그 벽을 한번 넘어서보자며 굳게 마음을 다져봤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어느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와 막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아버지에게 100감사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음을 좇아 얼른 펜을 들어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렇게도 막막했던 감사거리가 콩나물 머리처럼 들고 일어나며 아버지의 사랑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00번째 감사에서는 미움과 원망과 상처의 대상일 뿐이었던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용서를 구하며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60여 년 만에 아버지와 화해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내게 새로운 하늘,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해 추석 명절에 아버지 산소를 찾아 100감사 편지를 고이 묻어 드리고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의 시간을 가졌었다.  

내가 감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며, 나에게 감사는 내적 치유의 특효약이다.

모든 사람들이 감사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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