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감사장례식“아름다운 이별”
  • 김서정 기자
  • 승인 2019.02.28 10:08
  • 호수 219
  • 댓글 0
감사장례식을 적극 권하고 있는 감사나눔신문 김용환 대표의 어머니 빈소. 근조기와 화환 사이에 걸려 있는 감사 글들을 함께 읽으며 애도하고 나면 고인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면서 산 자들 마음에는 온기가 흐른다.

장례식을 달리 보다
“애도의 작용은 무엇보다 의미화 요소들이 존재 속에 생겨난 구멍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발생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수행된다.”

프랑스 정신의학자 라캉의 말입니다. 많이 어렵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지면에서 다룰 기사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자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관련 논문이 있다면 조언이라도 받으면서 풀어갈 수 있을 텐데, 아직 전무합니다. 감사장례식에 관한 것입니다.

감사장례식.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있었던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상주(喪主)들이 장례식장에서 혹은 이미 썼던 고인(故人)에 대한 100감사를 애도 기간 내내 걸어놓았다가 관에 넣어드리는 의식(儀式)입니다. 충분히 슬퍼하면서 망자(亡者)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망자에 대한 감사를 상기시키면서 망자를 떠나보내자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기존에 우리가 행해왔던 장례식 문화보다 더 나아 보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연결은 긍정, 분리는 부정
그럼 라캉의 문장에 나오는 구(句)나 절(節)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감사장례식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애도의 작용.’

애도(哀悼)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고, 작용(作用)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거나 영향을 미침’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죽으면 슬픔이 먼저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것은 크든 작든 산 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왜 사람이 죽게 되면 슬픔부터 일어나게 될까요? 여기서 모든 사람을 언급할 수 없어 어머니에게 집중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가량 있다가 세상에 나옵니다. 나오자마자 어머니와 아기를 연결시키고 있던 탯줄을 끊습니다. 연결 관계에서 분리 관계가 됩니다. 이때부터 아기는 공포를 느낍니다. 이 느낌은 무의식 속에서 평생을 가지만 정말 충격적인 공포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별 문제없이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형태 없는 연결의 끈이 승화원 불로 완전히 타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생존 의지가 그만큼 꺾여나갑니다. 당연히 슬픔이 밀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결을 긍정으로 보고 분리를 부정으로 봅니다.

이는 어머니 생존 자체만으로도 자식들은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륜과 도덕을 떠나 생물학적인 작용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글로 꺼내라
라캉의 다음 말을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의미화 요소들이.’

무슨 말일까요? 차가운 안치실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부여하는 산 자들의 생각입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생각 속에 가두지 않고 꺼내 보면서 애도하는 게 감사장례식입니다.

감사 쓰기에 익숙한 분들은 아마 알 것입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그냥 속에 가지고 있을 때, 말로 할 때, 글로 표현할 때, 그 인식의 정도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것을요.

감사장례식이 우리 사회를 더 밝고 건강하게 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감사나눔신문 김용환 대표가 장례식장에 걸어 놓았던 어머니 100감사 가운데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서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저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영웅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삶은 제게는 삶을 자세히 알려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저의 울타리라서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저의 마음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은 제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이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에게 쓴 5감사를 소개해보겠습니다.

“1.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2. 병원에서 며칠 고생 안 하시고 소천하셔서 감사합니다. 3. 늘 하나님께 의지해 기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4. 덕분에 자식들 행복하게 살게 된 것 감사합니다. 5. 하나님 품에 안기신 어머니, 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

지난 2017년 아버지를 보내신 포스코ICT 박인만 부장의 상중(喪中) 감사일기를 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셔서 누우셨던 우리 집이 천국인 줄 아시고 잠깐 현관 앞에 나가셨다. 새 친구 맺으신 폐렴으로 위독해지셨다. 호스피스 병동 입원 중 세 친구 암 통증으로 의식 잃어가셨다. 전 가족 하루 1끼 7일 금식기도 중 하늘 부름 받으셔서 감사합니다.”

슬퍼하는 애도의 마음을 감사의 글로 바꾼 다음 그걸 읽고 있으면 어떨까요? 경험해봐야 알겠지만, 고인에 대한 ‘의미화 요소’들이 더 선명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다가와 더 깊이 애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1) 김서정 기자(가운데)가 어머니에게 쓴 100감사를 아들(왼쪽), 동생(오른쪽)과 함께 잡고 있다. (2) 전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오른쪽 두번째)과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쓴 5감사카드를 들고 있다. (3) 입관하기 전 김용환 대표의 어머니 100감사가 관을 덮고 있다.

장례식은 새로운 관계 맺기
라캉의 그 다음 말을 보겠습니다.

‘존재 속에 생겨난 구멍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산 자를 지칭하는 것이고, ‘생겨난 구멍’은 말 그대로 가슴에 뻥 뚫린 듯한 공허 속으로 끈 떨어진 공포가 빠른 속도로 엄습하는 블랙홀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즉 고인이 떠나가신 충격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활기차게 살아갈 힘이 급속도로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장례를 며칠 동안 치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들은 말을 하면서 잘 살아가야 하니까요. 즉 장례식 과정은 고인과 상주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해나가는 기간입니다. 더불어 산 자들의 관계도 재편되고요.

글쓰기가 갖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 안에 박혀 있는 감정들을 글로 끄집어내면 감정까지 밖으로 나와 몸 안에 새로운 감정들이 스며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에 대해 생각만 하면 감정에 감정을 덧붙이는 모습이 되어 그 감정이 어디로 어떻게 분출될지 모릅니다. 즉 상처가 덧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기존 감정을 소멸시키고 더 나은 감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즉 고인에 대한 애도를 감사 글쓰기로 하고 나면 그 자리에 긍정의 감정이 생겨 삶에 활력이 붙습니다. 감사장례식은 고인을 더 깊이 사랑하면서도 산 자의 애도 기간을 빨리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화입니다.

산 자들의 관계 재편에 대해서는 기자 이야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여러 이유로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4형제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였습니다. 서먹서먹함을 깨뜨리는 게 있었습니다. 기자가 어머니에게 쓴 100감사족자였습니다. 빈소 한쪽 벽에 걸려 있는 100감사를 보면서 형제들이 어머니 살아생전 모습을 추억했습니다. 어릴 때는 함께 자랐기에 한 줄의 감사만으로도 공유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것이 세월의 공백을 메꾸어주었습니다. 만일 문자화된 것 없이 생각만으로 과거를 회상했다면 티격태격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감사’를 전제로 한 글을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장례식을 권합니다
라캉의 마지막 말을 보겠습니다.

‘발생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수행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다시 라캉의 전체 문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애도의 작용은 무엇보다 의미화 요소들이 존재 속에 생겨난 구멍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발생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수행된다.”

여전히 어려우신가요? 역시 기자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라캉의 말을 인용했던 것은 라캉이 대략 ‘욕망은 모두 죽음을 향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사는 세상은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데, 죽음 이후의 세상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에 실제로 우리의 사고 작용은 죽음 개념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산 자는 죽음 너머를 상상하며 살고 있기에 산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 너머의 실체를 모르기에 우리는 불안에 흔들리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은 어렵습니다.

감사와 장례식. 그 누구도 연결시킬 수 없었던 두 단어를 장례식 현장에서 실천한 분들은 평소 감사 표현에 친숙한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애도의 작용’을 애도로만 그치지 않고 감사로 승화시킨 분들입니다. 누구도 비껴가지 못할 죽음이란 과정, 감사가 산 자에게 더 큰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감사’가 붙지 않았을 뿐이지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들은 많은 장례식에서 읽혀지고 있습니다. 입관식에서 상주들이 건네는 말과 관에 넣는 편지, 발인식에서 지인들이 읽는 추도사입니다. 그 글들을 보면 고인에 대한 감사와 송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곳에 가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이 모든 게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 재정립입니다. 

고인(故人)도 산 자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애도의 작용, 그것이 감사장례식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18호에 소개된 감사장례식 활동 방법을 다시 알려드립니다.”

준비물 : 5감사카드, 펜

① 감사나 눔장례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장례식장의 상황을 먼저 판단한다.
② 유가족의 대표에게 감사장례식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다.(※평소 감사장례식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다.)
③ 100감사족자의 유무를 확인하고, 평소 감사한 내용을 프린트물 또는 파일로 보관하고 있는지 물어본 다음 메일로 받는다.
④ 감사족자가 준비되지 못한 상황이라면, 고인에게 평소 감사했던 내용을 카드에 쓰게 한다.
⑤ 카드를 다 썼다면 모아서 사진을 찍은 다음, ‘고인에게 쓴 5감사’라고 봉투 겉면에 쓴 다음 입관식 때 관속에 넣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준 다음,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해준다.
⑥ 유가족 대표가 경황이 없는 탓에 챙기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가능하면 제안한 사람이 끝까지 챙겨주는 방법도 좋다.) 
⑦ 입관식 때 고인이 누워 있는 관속에 감사족자를 펼쳐 덮거나 품속에 5감사 카드를 넣어준다. 

김서정 기자  kimsj4416@hanmail.net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서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