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39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미국의 한 남성(크레이그 콜리, 71세)이 시미벨리시(市)로부터 2100만 달러(약 235억 4100만원)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24세인 전 여자 친구와 그녀의 4살 된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39년간 복역을 했다. 그러던 2017년 시 경찰서와 관할 검찰은 브라운 전 주지사에게 DNA 감식 결과 살해된 콜리의 여자 친구 침대 시트에서 채취된 DNA가 콜리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면을 권고했다.

그는 사면된 이후 시미벨리시를 상대로 피해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시 측은 그에게 2100만 달러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만약에 누가 당신에게 2000만 달러를 주면서 30세에서 70세까지 인생의 가장 소중한 40년을 감옥에서 살인범의 불명예로 자신의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라고 하면 그렇게 살겠는가?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피를 흘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는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걸고 탈북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다. 우리에게 있는 이 자유야말로 얼마나 귀한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영어에서 똑같이 자유로 번역되는 단어라도 뉘앙스가 다른 두 가지의 말이 있다. 그 첫째는 리버티(liberty)로서, 이것은 라틴어의 리베로(libero) 즉 해방한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옛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포로들을 노예로서 소나 말처럼 부리고 있었는데, 노예의 신분에 있는 자가 그 신분에서 해방되는 때, 그때 리베로라는 말을 썼다. 따라서 리베로는 어떤 억압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다른 또 하나의 자유로 번역되는 단어는 프리덤(freedom)이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바치는 자유를 뜻한다. 흔히 자유라는 것을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로만 생각하고, 이제는 자기 멋대로 무언가 하려는 임의대로의 자유를 생각하기 쉬운데 다른 사람을 향하여 자기를 바쳐서 스스로 매이는 측면도 자유 중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우리가 자유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였다.사람들은 어디엔가 매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매여 있다가 풀리면 허전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의 상실을 느낀다. 우린 소속감이 없으면 외롭고 살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 매여 있다는 예속감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매여 있느냐가 문제이다. 매여 있을 만한 것에 매여 있으면 복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구속이 된다. 가족은 가정에 매여 있어야 정상이며 이때 편안함을 느낀다. 집에서도 아예 아내에게 매여 있으면 편하다. 아내는 남편 안에 매여 있어야 좋은 것이다. 매여 있을 때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매이지 말아야 할 것에 매이는 것은 구속이며 파멸이다.

우리가 진정한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내어놓을 때 우리는 더 많이 자유로워진다. 짐을 줄이고 무게를 줄이고 지갑을 비워나갈 때 그에 비례하는 자유를 맛보게 된다. 둘째는 낮아질 때 자유로워진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내놓을 때, 포기할 때 우리는 놀라운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셋째는 져주고 양보할 때 최고 수준의 자유가 찾아온다. 때로는 깨끗하고 과감하게 져주고 양보해 보라. 마지막으로는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함을 깨달았을 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자유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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