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종합
아, 어머니!“감사 글, 꼭 쓸게요”
  • 김서정 기자
  • 승인 2019.03.28 14:23
  • 호수 221
  • 댓글 0
우리가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부른 이름은 ‘어머니’일 것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부르고 싶은 어머니, ‘사랑합니다.’ 박점식 회장과 어머니(왼쪽)와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가족과 어머니(오른쪽).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

어머니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사랑굿’으로 잘 알려진 김초혜 시인의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좋은 시라고 여겨져 소개해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부분입니다. 어머니 자궁에서 자라기 시작한 태아는 분명 어머니와 한몸이었고, 어머니가 산통 끝에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다른 몸이 됩니다. 그러면서 양극의 삶이 펼쳐집니다. 어머니는 끝없이 주어도 주어도 자식만 보면 마음이 여리고 아립니다. 자식은 막무가내로 받아도 받아도 늘 더 달라고 떼쓰고 엉깁니다. 어머니는 오직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 당신의 몸은 잘 돌보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 무조건 자식 입에 넣어줍니다. 바다보다 깊고 넓은 그 무한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어머니’ 시처럼 자식이 어머니가 되어보는 것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손톱만큼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일으킨 기적
오랫동안 감사나눔신문 기자 및 감사 강사로 활동했던 유지미 님이 있습니다. 결혼 전 어머니가 싫다며 집을 나가 홀로 살던 중 감사나눔신문에 입사하게 된 유지미 강사는 감사의 힘을 접하고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벽이 두터웠던 어머니에게 100감사 등 감사를 자주 써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을 열었고, 핸드폰에 저장된 딸의 닉네임을 ‘싸가지’에서 ‘퍼스트레이디’로 바꾸었습니다.
감사가 주는 힘은 딸보다 어머니가 더 크게 덕을 보았습니다. 혈액암 투병 중이던 오숙경 님은 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직접 감사를 썼습니다. 두통과 부종으로 걷기도 힘들었던 몸에 생기가 돌면서 병마를 이겨내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던 미움과 원망과 분노 대신 감사가 자리 잡으면서 몸도 변화를 보였습니다.
“엄마, 깨워줘.
무거운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마법의 알람시계.
엄마, 그거 어디 있어? 
잃어버린 물건을 척척 찾아내는 명탐정.
엄마, 배고파.
언제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선물해주는 1등 요리사.
엄마, 용돈 좀.
애교 섞인 콧소리로 조르면 무이자 대출이 가능한 은행.
엄마, 있잖아...
가끔은 친구의 미운 점을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고민 상담사.
엄마, 아파.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밤을 지새우며 걱정해주는 백의의 천사.
엄마, 졸려.
머리만 닿아도 잠이 솔솔 오는 푹신한 베개.
엄마, 또!
나 잘되라고 매일매일 잔소리하는 인생지침서.
엄마, 미안.
툴툴거리는 말로 엄마 마음을 콕콕 찔러도 언제나 내 편.”
유지미 강사가 ‘엄마를 부르는 이유’였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 말은 어머니가 필요할 때만 자식이 어머니를 찾는 말입니다. 하지만 ‘감사 쓰기’를 하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펴보고 챙기는 자식이 되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말로 하는 것과 글로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넓습니다. 글로 전하는 감사가 주는 전율의 세계, 꼭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유지미 강사와 어머니.

무한 긍정 어머니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쿨리가 말한 ‘거울자아이론’ 개념이 있습니다. ‘자아는 처음부터 사회적이다’라는 것입니다. 나를 본다는 게 오로지 내 시선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내게로 와서 나를 본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르신이 탔습니다. 앉아 있기가 민망해 양보를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승객이 “학생이 참 착하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은 진짜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이 또 탔습니다. 다른 학생은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학생이 노인한테 양보도 안 하고, 참 버릇이 없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평소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학생은 양보하기 쑥스러워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그 말에 진짜 나쁜 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은 ‘다른 사람이 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느껴지면 내 자아상도 부정적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거울자아이론의 핵심으로 우리는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면서 ‘사회적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거울자아이론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운 영역이 있습니다. ‘어머니’입니다. 자식이 무슨 행동을 하든 어떤 모습을 보이든 어머니는 늘 자식의 편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외롭고 힘들 때 어머니를 찾아가 안기게 됩니다. 어머니가 끓여준 밥 한 술에 언 마음을 녹이며 삶의 의지를 다시 다집니다.

거대한 산보다 더 든든한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어머니에게 감사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복 같은 선물이 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쓰나미처럼 밀려듭니다.

2012년 당시 포스코ICT 이재경 차장이 84세의 어머니에게 100감사를 썼는데, 난생처음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일부를 소개해드립니다. 

“너의 서신 받고 보니 너의 착한 마음이 편지에 적혀 있구나. 보고 또 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편지 쓰기 싫어하는 네가 보잘 것 없는 이 엄마를 높이 평가해 주어서 고맙기만 하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성장기 동안 성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드린다.”

편지에 ‘언제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구절이 있습니다. 실제로 자식이 온순하고 긍정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머니가 늘 자식을 사랑과 긍정의 눈으로 보아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무한 사랑에 보답하는 길
부모님 100감사 쓰기를 주도적으로 해온 감사나눔신문에 실린 어머니 100감사들을 보면 대개 첫 감사는 이렇습니다.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잘 키워주셔서’,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바라는 것을 잘 들어주셔서’ ‘무조건 믿어주셔서’ 등등이 보편적입니다. 아울러 어머니 100감사 쓰기를 마치고는 그것을 건넨 뒤 보내온 소감을 보면 대개 또 이렇습니다.

“어머니 감사는 캐도 캐도 끊임없이 나오는 감자 같습니다.”

그러면서 몹시 미안해합니다. 무한 사랑에 보답을 해야 하는데 마음만 그렇지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습니다. 잠시 반짝하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지나면서 여느 때처럼 돌아갑니다. 그때 덜컥 소식이 옵니다. 어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청천벽력입니다. 감사를 전할 어머니란 존재가 부재(不在)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머니께 1000감사를 쓴 천지세무법인 박점식 회장은 나아 보입니다.

“어머니가 가셨다. 이렇게 빨리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래도 임종할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다. 아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그러셨던 것일까. 아들이 집에 없는 날 갑자기 악화되셔서 짧은 시간 고생하시고 가셨다.”

임종을 보고 안 보고의 차이는 뭘까요? 더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안 담고의 차이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겠지요.

“엄마는 제가 독일로 유학가기 전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유학 가는 저의 마음에 엄마와의 작별인사를 나누고서 1977년에 유학을 갔고 1979년에 만60세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나의 서재에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고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살아생전 어머니에게 글로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의 어머니 감사입니다. 이기수 전 총장은 “어머니 감사를 쓰는 동안 어머니께서 제게 해주신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났고 와 닿았습니다. 다시 고쳐 쓰면서 ‘참으로 감사한 일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어머니에게 감사를 쓰고 전해드리는 것과 임종을 보고 난 뒤 감사를 쓰는 것과 여타 상황에서 감사를 쓰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어머니 감사 쓰기를 아직 모르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 말입니다. 말로 선물로 행동으로 하면 됐지, 쑥스럽게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느냐고요. 감사보다 미안함이 더 많은데요. 그러나 지금껏 소개해드린 것처럼 많은 분들이 어머니 감사를 쓰셨고, 쓰기 전과 다른 그 먹먹함으로 인해 잠시 힘들었지만 그게 다시 삶의 불쏘시개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 사랑에 대한 감사의 글, 언제든 꼭 한 번 쓰시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정말 느끼기 어려운 어머니 사랑에 대한 작은 헤아림 아닐까요?

 

화인(火印)이 된 어머니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형태가 소멸되는 죽음을 맞습니다. 현재 우리는 승화원에서 한 줌의 뼈로 남습니다. 그러고는 작은 납골함에 모셔집니다. 살아 있는 자가 그 광경을 보는 마음은 정말 무겁고 참담합니다. 

화염(火焰)의 옷을 벗을 수도 벗길 수도 없어
태워지면서 형극(荊棘)의 길로 든다
살들이 타고 남은 재 영혼을 맑게 하고
그대만이 벗길 수 있는 이 옷은
타지도 않고 낡지도 않고 나를 태운다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93’입니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사랑을 불태운 어머니, 하늘에 가시기 위해 불에 탔어도 타지 않고 살아서 자식을 돌보고 계실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감사의 글을 쓰는 것, 꼭 실천하길 다시 권유합니다. 마음으로만 느낀 어머니 사랑에 영원한 화인(火印)이 새겨져 당신의 삶에 폭풍 같은 힘을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김서정 기자  kimsj4416@hanmail.net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서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