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감사 - 열혈사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에 도달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술 작품이든 상업 작품이든 먹고 사는 것에서 벗어나 여가 시간에 즐기는 모든 행위의 대상인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 어떤 모습으로든 행복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이 아닌 예술은 무엇일까요?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오종우 교수가 쓴 ‘예술 수업’을 보면, “예술을 다루는 학문인 미학을 가리키거나 심미적이라는 뜻의 단어(aesthetics)에 부정의 접두사를 붙이면 마비, 마취(anaesthetic)라는 뜻이 됩니다.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인 것이죠. 뛰어난 예술 작품은 무엇보다 우리의 감각을 되살립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감각의 지각 변동 가운데 최고는 무엇보다 행복한 즐거움일 것입니다.

파행적인 교육열을 다루었던 ‘스카이캐슬’에 이어 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드라마는 ‘열혈사제’입니다.

출발부터가 무겁습니다. 어떻게 성당의 신부를 경제 이익 때문에 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성당의 신부가 해군 UDT를 거친 국정원 출신일 수 있을까요? 게다가 상관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를 11명이나 죽게 했는데도요. 수녀도 그 출신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국내 최고의 타짜이니까요. 그 외 등장인물은 현실에 있을 법한데 왜 유독 성당 사람들만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람들로 해놓았는지 의아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주임 신부님을 살해한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젊은 신부는 유감없이 과거 실력을 보여줍니다. 비폭력과 용서로 신자를 이끌어야 할 사제가 뜨거운 피를 식히지 못하고 폭력을 사용해 범인 찾기에 나섭니다. 모든 사건을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증거 위주로 재판을 행하는 이 시대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인들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데 사제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사안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하나 더 갸웃거리게 하는 것은 현직 신부가 이 드라마를 자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이 드라마는 오로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구성요소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뒤틀려 있는 듯한 설정과 전개 과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이용해 사회구조적 폭력을 행하는 이들을 응징하는 모습이 즐겁고도 통쾌하고도 감동적입니다. 신부의 주먹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현실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전해오는 듯합니다. 정의로우면서도 골계미가 가득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열혈사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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