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일 의학박사의 건강이야기

 

환자 : “이빨 하나 빼는데 1초밖에 안 걸리는데 그렇게 비싸요?”
치과의사  : “그럼 시간을 좀 끌면서 천천히 뽑아 드릴까요?”
환자 : “아~뇨, 됐어요!”

우리가 흔히 느끼는 “아픔”이라던가 “통증”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의 “아픔의 구조”는 해부생리학적인 감각으로의 통각, 상처 난 조직의 증상으로서의 통증, 상처와 연관된 심리적 괴로움의 고통, 사회적 장애에 해당하는 통증행태 등 4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생리적 통각(痛覺)은 바늘로 찌르면 아프고 조직의 일부가 손상을 받으면 아프다고 느끼는, 아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정상적인 감각이다. 이 통각은 사람에 따라 그 예민성이 각각 다르다. 같은 양의 아픈 자극을 주어도 어떤 사람은 펄펄 뛰면서 아프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별로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 수도 있다. 이러한 예민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고, 나이에 따라 다르고, 민족에 따라 다르고,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유럽의 아일랜드나 독일 사람들은 통증을 잘 참아내는 민족으로 되어 있고 이탈리아 사람이나 유대인들은 잘 참지 못하는 민족으로 평가 받고 있다. 흑인들은 주사바늘만 보아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도망가려고 할 정도로 참을성이 적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통증에 대한 참을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정상적인 통증 감각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어야만 하고 적당한 예민성도 유지해야 한다.  바늘이 피부에 닿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아야 아야” 하는 엄살쟁이도 안 좋고, 자기 살을 찌르면서 들어가는 바늘을 눈을 똑바로 뜨고 들여다 보면서 “시원하다”고 할 정도로 둔감해도 안 좋다.

둘째는, 증상으로서의 통증이다. 우리 몸의 어떤 장기에 질병이 생겨서 조직에 손상이 생겼을 때 그 국소가 아프다고 느끼는 통증을 말한다. 이러한 통증이야말로 잽싸게 손을 써서 그 통증의 정확한 장소와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표면에 생긴 통증이 심층부에 생긴 통증보다 더 아프다고 느낀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이 살짝 베이거나 조그마한 가시에 찔렸을 때에, 총에 맞았거나 칼에 깊이 찔렸을 때보다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콩팥이나 간처럼 깊은 곳의 알맹이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보다 피부나 쓸개나 방광 같은 껍데기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더 많은 통증을 느낀다. 동양의학에서는 간, 폐, 비, 신, 심장 같은 “덩어리 장기”를 장(臟)이라고 하고, 위, 소장, 대장, 쓸개, 방광 같은 “주머니 장기”를 부(腑)라고 한다. 따라서 ‘장’은 통증에 둔하고 ‘부’는 통증에 예민하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정상적인 감각으로서의 통증은 있어야만 되는 통각이지마는, 여기서 말하는 병적증상으로의 통증은 병과 함께 빨리 치료해야하고 없애야만 하는 통증이란 말이다.

셋째는, 감정으로 느끼는 통증이다. 조직에 손상을 받은 개인이 자각적으로 느끼는 “고통스런 감정”으로서의 통증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통으로의 통증”은 인간만이 느끼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이거 야단났네, 어쩌면 좋아” 하는 식의 사고력이 없기 때문에 고통은 없으며 그냥 감각으로서의 아프다는 통증만을 느낄 뿐이다. 아기를 낳는 산모의 경우는 엄청나게 아픈 통증이 있더라도 좋은 일로 생기는 아픔이란 걸 알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감정은 많지 않으나, 암 환자가 겪는 통증은 그것이 비록 같은 정도의 통증이라도 훨씬 더 심한 고통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같은 “감정적 느낌인 고통의 통증” 치료를 위해서는 다분히 정신적 심리적인 요인을 감안해야 성공적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로, 병적 행태로서의 통증이다. 이것은 이미 감각에 국한된 증상으로서의 통증의 범위를 넘어선 단계이다. 통증이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행태로 고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단계에 이른 환자는 통증 자체가 그 사람의 생활의 중심에 자리를 굳게 잡고 있다. 그에게는 생활의 모든 것이 통증과 직결된다. ‘안녕 하세요?’ 하는 평범한 인사에도 “아이고 안녕이 다 뭐요, 요새 아파서 죽겠소” 라던가,‘어디를 가세요?’ 하고 물으면 “아파서 그냥 이리저리 쏘다니는 거요” 라던가, ‘바깥어른은 잘 계시오?’ 하면 “아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 양반이 편안할 리가 있소” 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통증으로 똘똘 뭉쳐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는 통증이 사회적 장애로 나타나 있다. 대인관계와 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언행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통증 자체를 아무리 치료하려 해도 잘 낫지를 않는다. 통증행태를 교정해 주어야만 치료효과가 나타난다.

이와같이 통증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에, 통증을 효율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통증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왜(Why)” 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무엇(What)”을 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How)” 해야 하는지는 가장 중요하다.
좋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의 지혜이지만, 좋은 의사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지혜이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