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감사 -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Long Live the King, 2019)

 

어느 날 일이 많아지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기존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할 때 특히 그러하다. 새 스토리를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능숙하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할 때는 더 심해진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비우면 그 내용들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쉼의 방법은 숱하다. 일의 사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또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저마다 고유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열 구분은 의미가 없다.
내가 선택하는 쉼의 방법은 19금 청불 영화를 보는 것이다. 야한 것은 안 보고 폭력성이 짙은 영화를 선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폭력 장면을 보면서 내 안의 응어리들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주먹질이 내 안의 쇠뭉치들을 거둬낸다는 것이다.

이날도 한없이 머리가 무거워져 인터넷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폭력 장면을 잘 소화해내는 김래원 배우가 눈에 보였다. 바싹 다가가 보니 ‘범죄도시’를 찍은 감독의 새 영화였다. 그래서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니 19금 청불 영화 표시가 있는 것 같았다. 저녁 약속 안 잡고 홀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 첫 장면은 재개발 철거를 반대하는 시장 상인들과 철거 용역들이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뻔한 장면이지만 기대가 되었다. 기존 영화들과 다른 폭력 장면이 터져 나올 거라 짐작하며 긴장을 하는데, 포커스는 김래원과 여주인공 원진아의 티격태격 말싸움이었다. 이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잔혹한 진압에 있는 게 아니라 원진아가 김래원 뺨을 세차게 때리는 것이었다. 싱거웠지만 더 큰 반전을 바라며 영화에 몰입하려고 애썼다. 내 안에 가득 찬 스트레스를 뽑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폭력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정말 크게 보여주려나 하면서도 실망감이 슬슬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한 방이 나올 조짐이 보였다.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조폭들이 이를 말리는 종업원을 괴롭히자 김래원이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제압하는 것은 좋았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그래도 마동석과 윤계상을 등장시켜 속 시원한 폭력 장면들을 연출해낸 ‘범죄도시’ 감독의 작품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으려는 순간, 김래원은 좋은 사람이 되겠다며 멘토로 삼은 최무성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오직 첫눈에 반한 원진아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보니 19금 청불 영화가 아니라 15금 영화였다. 내가 본 것은 영화 포스터가 아니라 내 안의 응어리였던 것 같다. 현실을 잘 못 보는 시선에 주눅이 들며 상영관을 나섰다. 그러고는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읊조렸다.
“마음이 밝아지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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