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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무’ 사이에는 ‘삶’이 있었네깨달음 준 숲에 감사
  • 김서정 기자
  • 승인 2019.06.28 10:19
  • 호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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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풍경을 마주합니다. 풍경의 경험들이 모여 일상이 되고 세월이 되고 삶이 됩니다. 우리보다 위대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보면 어떨까요?

 

#풍경1-소설가가 되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마음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학과 과학이 골머리였는데, 대학 진학을 위해 팽개쳐둘 수가 없었습니다. 일정 시간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부모님의 큰 기대에 어긋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문득 삶이 허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의미부여하며 사춘기를 보낼 무렵 시와 소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읽다 보면 성공과 부를 쫓는 속세의 삶은 속절없어 보였습니다. 그것이 버팀목이 되면서 정의를 추구하는 청춘 시절을 통과했고, 운이 좋게도 이십대 후반 소설가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풍경2-문화해설가가 되다
15년 전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청소년용 평화 책을 집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관련 공부를 위해 인터넷 검색 중 읽어야 할 책의 저자들이 강의를 하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청을 하려는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서대문형무소에서 자원봉사로 해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수긍하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앉아서 글만 쓰지 말고 남 앞에서 말을 해보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바깥보다 더 추운 서대문형무소에서 진땀을 흘리며 독립운동과 민주화, 그리고 모두가 가져야 할 평화의식에 대해 안내를 했습니다. 말은 버벅거렸지만 끝나고 나니 부쩍 내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해설을 수년 간 하던 중 한양도성을 안내하는 해설사 모집이 있었습니다. 해설이 공부를 시켜준다는 것을 알고는 덥석 신청했습니다. 서울의 주산인 백악산을 넘으며 조선의 역사와 현재의 서울을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끝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시작점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이란 공간을 계속 보다 보니 공간의 확장은 어디까지 이루어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근원에 대한 문제가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풍경3-감사를 만나다
프리랜서 작가이자 편집자로 생계를 이어가며 문화해설가도 병행하던 무렵 감사 책 편집 의뢰가 왔습니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라 비판적 사고가 강했던 내게 그 무엇이든 감사를 표현한다는 게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책을 만들어야 할 입장이니 감사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감사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써서 문자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보낼 곳이 없어 아내에게 세 개의 감사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렸습니다. 글쓰기가 본업이지만 감사를 글로 표현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보다 미안함이 앞섰고, 정말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꾸물거렸습니다. 복잡했습니다. 아내의 답이 오지 않아 집에 가서 물었습니다. 아내도 깜짝 놀랐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풍경4-숲해설가가 되다
문화해설가로, 글쓰기 강사로, 감사나눔신문 기자로 지내던 중 스토리텔링 강의를 하는 단체에서 방향을 바꾸어 국비로 숲해설가를 양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숲해설가들을 위해 더 나은 스토리텔링을 알려주려면 나 자신이 숲해설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 동안 200시간 교육을 이수하는 것도, 주말마다 실습을 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보다 더욱 지치게 한 것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나무들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비술나무, 귀룽나무, 노간주나무, 회화나무, 덜꿩나무, 야광나무, 미선나무, 히어리 등등. 글을 만지는 작가에게 이처럼 생소한 단어를 그 나무에 연결시킨다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멀리 내치기는 싫었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고흐 그림인데 ‘측백나무가 있는 밀밭’으로 많이 불린다. 하지만 저 나무는 사이프러스가 맞다. 이제는 오류를 잡아 ‘사이프러스’라고 한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나무에 감사한다.

#풍경5-숲해설에 나서다
기나긴 여정 속에서 2018년 7월 마침내 숲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요, 운전면허도 없는 내게 산림청에서 주는 국가자격증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근심도 앞섰습니다. 숲해설가라고 하면 분명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물어올 텐데, 실제로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난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종로의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해설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종로구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나무를 탐방하는 것인데 나무만 말하는 게 아니라 가는 길에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해설 경험이 많은 내게 의뢰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해설이 나를 공부시켜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민했습니다. 일반 숲해설보다 내가 감동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풍경6-생명의 근원을 묻다
보통 숲해설을 들으려면 수목원이나 휴양림에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주로 숲과 나무, 풀을 이야기합니다. 시설 설명이 있기는 하겠지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자연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종로의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서’는 숲과 역사가 어우러진 것이라 좀 특이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참여자들 대부분이 숲해설가 혹은 유아숲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입니다. 도시에 어떤 멋진 나무가 있나, 어떻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나, 궁금증이 참여 동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숲해설을 하게 되면 반응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일반적인 숲해설도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마음먹은 대로 내가 감동받았던 것을 공유했습니다.
“생명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네. 숲이 만들어내는 산소가 없으면 동물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나무의 날숨이 우리의 들숨이 되고, 우리의 날숨이 나무의 들숨이 됩니다. 그런데 나무는 우리 없이도 삽니다. 우리는 나무 없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독립영양체, 우리는 종속(기생)영양체라고 합니다.”
책으로 공부했지만, 현장에서 나무를 만지며, 햇빛을 보며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이 무척 놀랐습니다. 나도 기뻤습니다.

#풍경7-예술을 말하다
서울의 최초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100년이 넘은 낙우송(落羽松)이 있습니다. 종로의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보면서 무엇을 이야기할까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새의 깃털처럼 떨어져 낙우송이고, 수형(樹形, 나무 전체 모습)이 메타세쿼이아와 비슷하지만 낙우송은 잎이 어긋나고 메타세쿼이아는 잎이 마주난다는 말은 모두가 하는 말이라 생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본 정보라 하는 게 옳았습니다. 그 뒤에 무엇을 덧붙일까 고민하면서 자료를 뒤적여 나갔습니다. 불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내게 왔습니다. 고흐는 말년에 우울증을 앓았고, 치료를 위해 정신병동에 입원했습니다. 고흐는 병상에서 사이프러스를 매일 보았습니다. 유럽에서는 무덤가에 심는다는 사이프러스에 대한 국내 번역은 다양했습니다. 삼나무, 측백나무, 낙우송 등등이었습니다.
고흐의 ‘측백나무가 있는 밀밭’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근대 이전의 스카이라인은 나무였습니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면 고흐는 측백나무 아니 사이프러스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의 삶이 지상에서 그치지 않고 나무를 통해 하늘이란 죽음의 세계로 자연스레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빌딩이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도시에 사는 우리들,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풍경8-삶을 말하다
나무를 공부하면서 나무를 해설하면서 궁극에 다다른 것은 알고 보니 삶이었습니다. 나무는 생리작용으로 생장을 하고, 우리는 뇌와 중추신경 작용으로 성장을 합니다. 하지만 나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무는 우리보다 위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나무에 대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곧 우리 삶에 대한 감사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동나무 종류를 해설하고 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나무와 우리 사이에는 삶이 있습니다. 나무를 통해 또 다른 나의 삶이 보였습니다. 작가이기에 그걸 시로 썼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방법으로 나무와 교감하시면 더 멋진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오동나무
꽃개오동, 개오동, 벽오동, 오동을 말하고 난 뒤 / 다음날 추가 자료를 궁리 하는데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 나 장가가기 전날 / 나무 한 그루 없는 마당에서 /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단다 //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 그런데 알고 보니 마산 오동동이 있단다 // 아, 부끄럽구나 / 나 장가가는 것이 기뻐 노래를 불렀는 줄 알았는데 / 마산이 고향인 엄마는 / 당신이 태어난 삶을 노래했던 것이다 / 당신이 잘 살았다는 기쁨을 노래했던 것이다 // 다시 오동나무를 보러 가야 하는 이 아침 / 비 오는 밤 낙숫물 소리보다 / 더 큰 시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 삶은 참으로 어렵다 / 꽃개오동, 개오동, 벽오동, 오동처럼.

#풍경9-떨면서 살아요
도시의 나무만 보면 지칠 것 같아 인왕산 숲길을 가는 특별코스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작했는데, 처음 멘트를 소개해봅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고 시인 윤동주는 썼습니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라고 물리학자 김상욱은 말했습니다. 혹 윤동주 시인처럼 잎새에 이는 바람에 크게 반응해보신 적 있나요? 김상욱 교수는 정지한 것들 가운데 나무를 예로 들어 말했습니다. 나무가 떨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의 삶과 내가 격정적으로 교감하고, 나무 등 사물과 깊게 떨림을 주고받는 것, 그 사이에 감사가 매개되면 우리 삶은 더 크게 떨리며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kimsj44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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