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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무덤을 아십니까?답답한 마음이 뻥 뚤려
  • 제갈정웅 편집인
  • 승인 2019.08.30 11:28
  • 호수 231
  • 댓글 0
지보마을의 소중한 문화 자산인 말무덤을 자랑하는 여성들의 생활 문화공동체 <말무덤 마을의 예술이야기> 모임 회원들이 힘든 말을 적고는 항아리에 담으며 활짝 웃고 있다.

 

 

말[言]의 무덤이라니
경북 예천에 말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이 타던 말을 묻은 무덤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타는 말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말의 무덤[언총言塚]이라는 것을 알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분들이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말을 땅에 묻을 생각을 했을까?
통영에 강의 가는 길에 조금 돌아서 가기로 했다.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에서 상주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40분 정도 지방도로를 달리면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156-1에 이른다.
말무덤은 이 마을 동쪽 끝자락에 있다. 도로변의 말무덤 표시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230m 정도 낮은 언덕을 오르니 예천군에서 만들어 놓은 말무덤 안내판과 말무덤 표지석이 마중을 했다. 안내판에는, 무덤은 400-500여 년 전에 설치되었고, 표지석 설치는 1990년에 했다고 쓰여 있다.

미움을 사발에 담으시오
예천군이 전하는 말무덤의 유래는 이렇다. 
이곳 대죽리는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마을 어른들이 원인과 처방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이 예방책을 일러주었다.
그 과객은 먼저 산의 형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라 마치 개가 짖어대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항상 시끄럽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놀랐다. 대죽리를 감싸고 있는 야산은 과객의 말대로 ‘주둥개산’으로 불리고 있었다. 
과객은 말을 이어갔다.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인 논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재갈바위를 세우십시오. 그러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 사발을 하나씩 가져오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과객의 지시대로 한 뒤 그를 따라 주둥개산에 올랐다. 그러고는 역시 그의 말에 따라 큰 구덩이를 팠다. 과객이 말했다.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비방과 욕을 모두 각자의 사발에 뱉어놓으십시오. 그리고 묻으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싸움의 발단이 된 말[言]들을 사발에 담아 깊이 묻었다. 말무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 싸움은 없어졌고 평온한 마을이 되었다.
말무덤의 또 다른 유래에 대하여 김홍신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예천으로 피난민이 몰렸는데 외지인들에 의해 예의범절이 무너져 뒷산에서 바위 두개를 옮겨와 재갈바위라 명명하고 그동안 했던 나쁜 말들을 지방에 써서 제사를 지내고 무덤에 묻은 후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그후 왜군이 왔을 때 신세졌던 다른 고을에서 피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무덤 바로 옆 마을인 신풍리에서 신풍갤러리와 갤러리윤 펜션을 운영하는 윤장식 대표에 의하면, 아주 옛날에는 파평 윤씨 집안도 함께 지보마을에 살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무덤 이야기가 있기 훨씬 이전에 신풍리 쪽으로 이사를 왔고, 그 마을에는 소위 각성바지인 조씨, 박씨, 김씨, 최씨가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한다. 

화를 돋울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을 종이에 적어 사발에 담아 묻은 뒤 평온한 마을이 되었다는 말무덤 마을 풍경들.

 

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8월 중순의 농촌 마을은 모든 생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무덤 위에도 파란 풀들이 잘 자라서 보기 좋았고 무덤에 붙어 있는 청보리밭의 보리들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무덤에 이르는 길옆에 8개의 자연석과 무덤 앞에 5개의 자연석에 말에 관한 속담과 명언들이 새겨져 있다. 
우선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 아니면 듣지 마라.”
“세 살 먹은 아이 말도 귀담아 들어라.”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작게 열랬다.”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말 뒤에 말이 있다.”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을 할수록 준다.”
이를 포함하여 13개의 자연석에 담긴 34개의 말에 관한 명언과 속담을 분석해 보면 6가지 정도로 분류가 된다. 
첫째, 말을 조심해서 해라. 둘째, 말이 대단히 중요하다. 셋째,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라. 넷째, 상황에 알맞게 말해라. 다섯째,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해라. 여섯째, 남보다 나를 먼저 살펴라.

행복해지는 말
이곳에는 지보마을의 소중한 문화 자산인 말무덤을 자랑하는 여성들의 생활문화공동체인 <말무덤 마을의 예술 이야기>라는 모임이 있다.
요즈음은 여성들의 마음밭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하여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이번에는 별도의 이벤트를 가졌다. 옛 조상들이 속상한 이야기나 말이 씨가 되어 마을이 시끄러웠던 말들을 단지에 넣어 묻었던 전통을 이어 받아 회원들은 시집살이 하며 가슴에 맺혀있던 이야기들을 종이에 써서 단지에 넣고 묻어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번 퍼포먼스를 이끌고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계신 박성하 씨의 소감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슴에 묻어뒀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와 글로 표현되어 상처를 싸매어 묻는 것과 같은 활동이었습니다. 씨족사회에서 말 못했던 사연들을 꼼꼼히 적어오신 지보면 여성들의 모습은 경건함이 있었습니다. 무덤에 글을 묻고 다 같이 정자 위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하였는데 환한 얼굴로 노래하는 모습엔 아픔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열정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모임의 대표인 강필희 회장은 “모든 말을 묻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형식을 갖추어 우리는 묻었지요. 글을 쓰면서도 후련했지만 이 기대가 나의 마음을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회원인 이경자님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답답한 것들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라고 말했고, 현승림 회원은 “이제 마음 편히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김선화 회원은 “시집살이 하며 속상했던 기억들을 글로 풀어서 영원히 안녕했어요”라고 소감을 말해주었다.
이분들이 어떤 내용을 항아리에 담았는지 구체적으로 되묻지는 않았다. 속상하고 답답했던 것들이 풀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을 때 일어날 후폭풍이 미연에 방지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말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말무덤을 떠나는 데 그곳에 적힌 다음 말이 다시 떠오른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 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말보다,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말보다, 그 누구도 나 자신도 행복해지는 말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 말들이 우리의 관계를 만드는 것 아닌가. 말무덤이 분쟁의 마을에 화평을 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 노력해보자. 
감사합니다. 
 

제갈정웅 편집인  gratitude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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