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감사 - 조커(Joker, 2019)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조커’ 감독 토드 필립스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워너의 DC 유니버스 안에 이미 조커가 존재하는데, 새로운 조커를 창조하는 것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았나. 
=물론 어려웠다. 75년 이상 조커는 정립된 캐릭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캐릭터의 기원에 대해 영화를 만들겠다니,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안 돼’라고 말할 근거가 충분했다.”

조커의 정립된 캐릭터란, 조커가 에이스 화학공장에서 화학약품통에 빠져 얼굴이 하얗게 된 뒤 배트맨 반대편에서 악당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왜 나쁜 짓을 하게 되었는지 우울하고도 기괴한 가족사 없이 그저 착한 일 안 하고 사는 것에 재미를 느낄 뿐이다. 그런 설정 때문인지 조커의 과거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게 된다.

이런 캐릭터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영화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연쇄살인범이나 어린이성폭행범의 경우 어린 시절 심한 놀림이나 학대 혹은 결손가정이 배경으로 등장했는데, 최근 영화에서는 대략 ‘그렇게 하고 싶어서요’란 맥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는 사회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인성(人性)을 오로지 개인의 성정(性情)으로 몰아가는 것인데, 세상 전체를 보는 시선을 빼앗아 갈 수 있다.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조커 인물의 기원을 다루었다는 영화 ‘조커’가 상영 소식을 알려 보러 갔다.

줄거리는 간단해 보일 수 있었다. 고담시에서 광대로 살아가기는 한 데 웃어 주는 사람이 없다. 정신 질환에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치료비는 사회복지망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복지 예산 삭감이 발표되고 광대 아서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에게는 누워서 지내는 병든 어머니도 있다. 그런 반면에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부자들 모습이 비쳐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가난해지고 있다. 이를 미쳐 돌아가는 세상으로 규정하면서 서서히 아서는 사회관계를 흔들어놓기 시작한다. 출발은 자신을 조롱한 사람들에 대한 응징이지만, 개인의 복수는 고담시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개 과정이 선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행위는 있지만 행위자가 누구인지. 피해는 있지만, 피해자는 누구인지, 왜 그런지 대부분이 모호하다. 거기에는 아서의 안개 같은 연기가 일조하지만, 영화 제작 시점에 그런 의도가 있었단다. “영화를 시작할 때 오히려 신났던 건 조커에게 어떤 규칙도 없다는 거였다.” 감독의 말이다. 

영화는 보았고, 감사거리는 찾아야 했다.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것보다 정립된 감사를 계속 진화 발전시켜가야 한다는 생각을 준 것에 감사하면 어떨까? 어렵지만 계속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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