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일 의학박사의 건강이야기

 

질병의 기원은 아주 멀고 먼 옛날 인류보다 훨씬 오래 되었으며, 인간은 늘 질병의 희생이 되어왔고 질병에서부터 해방되어 보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원시 미개인들은 다수의 질병이 금기사항의 위반과 그 같은 일들로 노여움을 산 악령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멕시코, 페루 등에서 의학은 종교에 집중되었었다. 인도의학은 그리스 의학보다 앞섰으며 그리스 의학과는 하등의 관련 없이 독자적인 발전을 했으나 의학이 결코  종교로부터 분리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동양의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의학은 그 지식체계를 자연철학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5백 년 동안 이 나라를 통치하던 27명의 왕들의 평균수명이 44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의 의학수준과 일반국민들의 보건상태가 어느 정도였을 것인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헌이나 기록을 토대로 고찰해 보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기원전 430년경에 아테네 군대가 포티다이아에 출정했을 때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4000 명의 병사들 중 1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이 전염병이었다. 1348년경에는 쥐벼룩 때문에 퍼지는 페스트(흑사병)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6000만 내지 7000만 명이 사망했다. 뇌나 척수에 침입하여 마비성 치매 혹은 척수 마비를 일으키는 매독은 15세기 말 유럽을 갑작스럽게 덮쳤고 백색페스트라고도 불리던 폐결핵은 기원전 5000년 무렵의 선사시대 사람의 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이후 결핵이 인류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인간을 괴롭혀 왔다. 우리나라에서 결핵은 폐렴과 함께 60년대까지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이었다.  여름철이면 염병(장티푸스)과 호열자(콜레라)가 돌아 한 번 발병하면 마을 단위로 수십 내지 수백 명씩의 사망자를 냈고, 홍역, 백일해, 뇌염 같은 소아전염병은 1천 명당 1백 명에 이르는 높은 영아사망률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며 곰보를 만드는 천연두, 주로 다리에 마비를 일으키는 소아마비, 그리고 디프테리아나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도 극성스럽게 유행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전염병들은 “전혀 고칠 길이 없는 불치병” 이거나 “고치기가 매우 어려운 난치병” 으로 간주 되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20년에 30세밖에 안 되던 평균수명이 지금은 80세가 넘는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이유, 다시 말해서 사망률이 줄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해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전염병의 퇴치요, 또 하나는 수술법의 발달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화학자이면서 미생물학자이고 의학자인 파스퇴르(1822-1895)를 위시하여 그의 제자인 코흐(1843-1910)와 그의 동료 에를리히 등이 물질을 부패시키고 상하게 하는 것이 세균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또 이 세균을 죽이거나 무력화시키는 방법도 발견하게 되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고 하는 항생제를 발견(1928)한 이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작용이 각기 다른 항생제를 줄줄이 만들어 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염병의 퇴치”라고 하는 의학적 쾌거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인류의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또 하나가 1799년의 험프리 데이비에 의한 마취약의 발견이 수술 테크닉의 발달을 가져왔고, 응급처치법, 중환자 관리, 전쟁 부상자 치료, 사고환자 처리 등에 필요불가결의 뒷받침이 되었다. 이렇듯 전염병의 퇴치와 수술법의 발달이 과거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가능한 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질병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시대가 바뀌면서 지난날의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만하면 또 낯설은 괴질이 새로이 유행하곤 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질병들에는 각종 사고에 의한 외상성 질환을 제외하고라도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중풍, 암, 정신질환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현대인들이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대상은 암과 뇌혈관질환과 에이즈라 할 수 있다. 암(癌)이라고 하는 병은 여태까지 없던 것이 어디서 툭 튀어나와서 무섭게 퍼져나가는 새로운 병이 절대 아니다.  암은 생명이 이 지구상에 탄생된 때에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암과 생물 사이의 싸움은 오랫동안 있어 왔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발암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내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인간은 “발암물질의 바다” 한복판에 헤엄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망원인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암이다.
역사 속에 인류와 함께 존재하였던 질병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질병은 문명이나 사회에 의해 창조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볼 수 있으며, 질병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음도 알 수 있으며, 연구와 분석에 의해 질병의 원인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불치병과 난치병이 극복되고 퇴치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날의 우리들의 역사는 “영원한 불치병이란 없다”는 교훈을 주었으며 암과 같은 “오늘날의 난치병도 언젠가는 극복되고야 말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만 난치병 극복의 시기는 인류 전체의 관심과 노력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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