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일 의학박사의 건강이야기

 

 화병(화뼝, 火病)은 사실은 병명(病名)이 아니라 별명(別名)이다.  어깨의 통증도 어느 연령에서나 생길 수 있는데 오십대에서 흔히 생긴다고 해서 “오십견”이라는 병명 아닌 별명이 생겨 난 것이고, “테니스 팔꿈치(tennis elbow)”도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인데 그래도 테니스 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생긴다는 이유로 그렇게 부르는 별명이다.  우리 마음속에 불(火)처럼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우리는 “화가 난다”고 하며, 이런 감정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속에 억제되어 울체(鬱滯)된 상태로 있을 때 “울화(鬱火)라고 하고, 이것을 강조하느라고 “울화통”이라는 속된 표현도 사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속에 쌓였던 화가 발산될 때 “울화통이 터졌다”는 말도 한다.  요사이 유행하는 것으로는 “열 받는다”는 말이 있다.  열(熱)이나 불(火)은 서로 상통하는 말이니 일리가 있는 셈이다. 서양 의학은 병 중심의 의학이기 때문에 모든 비정상적인 상태에는 병명이 붙지만, 동양의학에는 병명이 아니라 불건강(不健康·未病)의 증(證, 症)이 붙어 다님으로 여기서 말하는 화병도 울화증(鬱火症) 또는 심화증(心火症)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몸의 오감(五感)은 그 강도(强度)를 높이면 다 통증으로 통하는 것처럼, 다양한 감정도 비정상 상태에서는 다 화로 통한다. 예를 들면, 오감은 시각, 청각, 미각, 취각, 촉각인데, 햇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이 아프고, 청각에 있어서도 소리가 너무 크면 귀가 아프며, 너무 매우면 맵다 못해 혀가 아프며, 냄새가 너무 강하면 코를 찌른다.  또 촉각에 있어서도 뜨거운 것도 정도를 높이면 아파지게 마련이고, 찬 것도 점점 차지면 결국 아프게 되며, 누르는 압력도 심하면 아프게 된다.  이처럼 감각은 심하면 다 통증으로 통하듯이, 감정도 심하면 다 화로 통한다는 뜻이다.  동양의학에서는 일곱 가지 감정(七情)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즐거움(喜), 노 함(怒), 슬퍼 함(悲), 근심 함(憂), 염려 함(思), 놀라움(驚), 두려워 함(恐) 등이 포함된다.  이 감정들을 오행(五行)에 귀속시키는데 즐거움(喜)은 화(火)행에 속하고, 염려 함(思)은 토(土)행에, 슬퍼 함(悲)과 근심 함(憂)은 금(金)행에, 놀라움(驚)과 두려움(恐)은 수(水)행에, 그리고 노 함(怒)은 목(木)행에 각각 속한다.  이러한 감정이 강도를 높이면 다 화(火)로 되거나 화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조화(調和, harmony)는 정상이요 건강이며, 부조화(不調和, disharmony)는 비정상이요 불건강(不健康)이다. 우리는 늘 칠정(七情)을 골고루 경험하면서 살아야 정서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관에 들어가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앉아 있거나 공포에 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돈을 내면서까지 울기도 하고 떨기도 하는 것은 마치 음식에 양념을 쳐서 영양의 조화를 이루듯이, 정서를 조화시키기 위해 치는 감정적 양념이기 때문이다.  오행의 상관관계는 다섯 가지 성질이 서로 활성화(相生)시키거나 서로 억제(相剋)시키는 상호 반응관계(interaction)를 지닌다.  따라서 노여움(怒, anger)이 억제되어도 화(火)가 뭉치고, 염려(思, stress)가 지나쳐도 화의 기운이 역류하여 쌓이며, 슬픔과 근심(悲憂, sorrow and depression)이 심해도 화에 울체(鬱滯, congestion)현상이 생기며, 놀라움과 공포(驚恐, frightening and fear)가 지나치면 즐거움(喜, heightening)이 억제되어 화가 쌓이게 된다.
화(火)의 특징으로는 위로 타 오르는 것(火熱爲陽邪), 진액을 태우는 것(耗傷陰津), 풍기와 출혈을 생기게 하는 것(生風動血), 정신심리(心神)와 상응하는 것(與心相應)을 들 수 있다.  그래서 화가 쌓이고 뭉치면, 자꾸 위로 치밀려고 하며, 발산하려고 하며, 폭발하려고 하며, 터지려고 하며, 심신(心身, Body-Mind)을 상하게 하려 한다.

사람은 항상 크고 작은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욕심을 만족스럽게 채우지 못하면 불만스러운 응어리를 남기게 된다.  이 불만의 응어리를 우리는 한(恨)이라 부르며, 이 한은 맺히는 것이며, 이 맺힌 한은 풀어야 하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한이 자꾸 축적되고 장기화되면 심신의 이상반응으로 나타나게 된다.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이상반응이 나타날 때 이를 임상적으로 심화증(心火症)이라고 하며, 별명으로 화병(火病)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에는, 신체적(physical)으로는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변비, 요통, 경부통, 두통, 심계항진, 호흡곤란, 이상감각, 빈뇨, 생리불순, 알레르기 등이 있을 수 있고, 정서적(emotional)으로는 불안, 우울, 분노, 긴장, 자기비하 등이 생길 수 있고, 행동적(behavioral)으로는  수행능력 저하, 건망증, 식욕의 변화, 수면장애, 약물남용 등이 생길 수 있다.  화병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슬픔, 우울, 염려, 등이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오래 쌓이는 것을 피해야 하고,  가벼운 화병의 경우에는 즐거움(喜)으로 발산시켜야 할 것이며,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깊고 큰 한에 의한 화병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한국적인 화병(火病)은 세계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며, 이의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는 우리나라의 동양의학자와 서양의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며, 동시에 같이 풀어야 할 한(恨)이다. 이 한국적 스트레스인 화병은 이미 세계적으로 통하는 의학 용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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