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시간, 참 빠르다.

새해 아침 일출을 보며 느꼈던 감흥이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세밑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분명 어제와 똑같은 24시간이지만 세밑의 하루는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세밑과 새해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마지막도 찾아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데, 우리는 왜 유난히 마지막이라는 말 앞에서 매번 복잡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는 것일까?

함민복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마지막’은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그 꽃의 향기와 빛깔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마지막이라는 시간적 공간에서 환호와 영광의 웃음꽃을 피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탄식과 절망의 검은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 곳에 어떤 꽃이 피어나든지 그 결과는 오롯이 지난 과정의 산물이겠지만 그 꽃의 색과 향은 상당부분 처음 또는 마지막 순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일에서 처음과 마지막을 특히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처음과 마지막 순간,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그 미묘한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해야 한다. 기분 좋게 첫출발을 하고 오랜 시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이제 마지막 몇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순간의 방심이나 오판으로 모든 것을 그르치거나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30년 넘게 건축회사에 근무했던 한 남자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평생 집 짓기를 해온 남자는 일에 지치고 기력도 떨어져서, 이제는 하루 빨리 편안하게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회사 사장이 마지막 부탁이라며 퇴직 전까지 집 한 채만 더 지어달라고 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남자는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못해 일을 맡은 때문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일을 하는 내내 흥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고 퇴직 날이 다가오자 조급해진 남자는 ‘까짓것 내가 살 집도 아니고, 나는 퇴직 하면 그만인데, 뭘.’하는 마음으로 대충 집짓기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그답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성되었고, 남자는 정년퇴직의 날을 맞이했다. 사장은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남자에게 뜻밖의 선물을 내놓았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남자가 마지막으로 지은 집의 현관 열쇠였다. 30년 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사장이 남자에게 집 한 채를 선물한 것이다. 남자는 그제야 땅을 치며 한탄했다. ‘아, 좀 더 튼튼하게 짓고 꼼꼼하게 마무리할 걸!’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무성의하게 일처리를 한 대가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모름지기 시작이 선하다면 마지막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유종의 미有終之美’라고 부른다. 마지막은 모든 것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이자 클라이맥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첫인상만큼이나 강한 이미지를 남긴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초(秒)를 다투는 기록경기에서도 마지막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라스트 스퍼트(last spurt)’라는 말까지 생겼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까지 전력을 다 해 질주하는 경기에서는 스타트도 중요하고 중간 과정도 중요하지만, 특히 마지막 순간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끝이라고 방심했다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 유명했던 요기 베라는 이렇게 말했다.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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