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감사 - 백두산(ASHFALL, 2019)

 

지난 12월 29일 아내가 가족송년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재난영화 ‘백두산’을 보고 외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송년회는 찬성이었지만,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뜩찮은 발걸음이지만 극장에 세 가족이 나란히 앉았다. 좌석은 만원이었다.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다 연말 일요일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불편한 심기는 영화를 보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천 만 관객을 동원했던 재난영화 기법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백두산 폭발 가정이 흥미를 돋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한 CG가 공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긴장과 이완이라는 스토리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중간 중간 배치된 웃음 장치도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라 큰 웃음을 터뜨리지 못했다.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3차 화산 폭발은 막았다. 한반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 왔고, 주인공들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며 일상의 행복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들이 외식 장소로 선호하는 식당을 찾아들어 갔다. 스테이크와 피자, 그리고 파스타를 함께 먹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좌석은 북적거렸지만 성인들만이 있는 자리는 음식을 먹거나 핸드폰만 오르락내리락했다.

우리 가족도 많은 말없이 접시만 비웠다. 그러면서 간간히 내리는 창밖의 비를 걱정했다. 재난을 극복한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아마 가족끼리 함께 식사를 하는 이 순간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영화 탓을 하며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을까?

먼저 나는 아내가 셀프로 가져온 오이피클을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양이 많아 보였다. 만일 남는다면 음식을 가급적 남기지 않으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내가 먹어야 했다. 간혹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국 물을 쏟아 옷을 닦고 있는 아내에게 약간 언성을 높였다. “왜 안 먹어?” 아들이 눈치를 채고 남은 오이피클을 가져갔다.

다음으로 아들이 아직 최종 대학 원서를 넣지 않았다. 정시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재수를 했고, 삼수를 한다면 심하게 아플 거라고 한 아들이라 속마음은 복잡했을 것이다. 송년회 기분을 낼 수도 없었고, 작정하고 본 영화가 아니라 감상평을 늘어놓을 여유도 없었다.

가족송년회를 한 듯 안 한 듯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원서 낼 대학을 다시 물색하기 시작했고, 나는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조용히 가족송년회는 끝났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너무 부정적이다. 감사 쓰기로 기억을 바꾸어보자.

“1. 백두산은 킬링타임용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봐서 감사합니다.

2.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상기시켜 주어서 감사합니다.

3. 우리 가족의 추억이어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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