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산행을 함께한 황회장은 오전 10시에 나를 포함한 여섯명의 일행과 청계산 옥녀봉에 올랐다. 그런데 산을 내려온 그는 오후 3시에 다른 친구 분들과 똑같은 코스를 다시 산행한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루 두 번씩이나 산을 오르는 무리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황회장은 오래전 이야기를 꺼냈다.

새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 1월 1일, 30여명의 회사 직원들과 통도사 뒤쪽에 있는 영축산에서 일출을 함께 하며 새해에 성취 하고 싶은 개인의 소원과 회사의 경영 목표 달성을 빌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세월이 지나면 각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20년 후인 2020년 1월 1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나 해돋이를 같이 맞이하자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해에 해발 1015m의 영축산에서 옛 직원들을 만나기로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철저히 약속을 지킬 준비를 하였지만 과연 다른 직원들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 약속했던 직원들 가운데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분들이 몇이나 되는지 물었더니 하나도 없단다.

황회장의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두 패로 나뉘었다. 한패는 부산까지 가서 추운 새벽 산꼭대기에 갔다가 아무도 안 오면 얼마나 실망하겠냐며 지금이라도 몇 분께 연락해 약속을 상기시키며 만나자고 하라고 했다.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는 직원이라도 황회장이 올지 안 올지 확신이 없기에 안 나올 수도 있으니, 당신이 약속장소에 간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다른 한 패는 미리 연락을 하지 말고 20년 전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지는가를 보는 것이 이번 이벤트의 핵심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비슷한 약속이 2000년 2월 22일에 있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였던 신영봉 선생님은 1980년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던 학급의 학생들과 20년 후인 새천년 2월 22일에 학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후 선생님은 1995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떠났다. 또한 그곳에서 암에 걸려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 선생님에게 옛 제자들과의 약속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귀한 일이었기에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귀국하여 제자들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사제가 된 제자가 있어 선생님이 영성체를 받은 감동적인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자기 자신과도 한다. 개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사람들은 자기와의 약속을 잘 지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도 잘 지킨다. 황회장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이다.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20년 1월 1일 영축산에 오른 그는 정상에서 생산을 담당했던 이사 한 분과 반가운 해후를 나누었다. 30여명의 직원들 중 그만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황회장은 해돋이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영축산 표지석을 안고 찍은 인증샷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20년 전의 약속을 지켜낸 두 분의 사진이 새해 아침을 잔잔한 감동으로 물들였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