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감사 - 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 2018)

몇 년 전 일이다. 한양도성 백악구간 해설을 할 때였다. 백악산 청운대에 서서 남산 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백악산이 주산(主山)이고 저 앞에 있는 남산은 안산(案山)이라고 불립니다. 안산은 주산을 지켜준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남산에 국사당을 지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신궁이 들어섰고,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중앙정보부 즉 지금의 국정원이 자리를 잡았고, 민주화가 된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날따라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일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집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70년대 당시 남산에 가면 뼈도 못 추렸답니다.”

그때 어르신 한 명이 내 앞에 떡 서더니 화를 내었다.

“왜 해설을 편파적으로 해요?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누가 그래요? 민원을 넣을 거예요?”

험악한 분위기는 다른 참가자들이 “역사책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요”라고 한 말 덕분에 가라앉았고, 이후 해설도 별 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개봉 첫날 조조로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서 그 어르신 생각을 한참 했다. 첫 번째 이유는 관객들 대부분이 어르신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그 어르신이 중앙정보부의 실체를 편파적(?)으로 보여준 이 영화를 보면서 혹 내 생각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 말이 인정받기 바라는 묘한 복수심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적 사실에 몇몇 부분만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구성했다고 하지만,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거의 사실을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과거 회상을 적절히 삽입하기도 했지만, 이는 현재의 일들을 부각시키는 것이어서 금방 현재로 넘어와 버렸다. 그러다 보니 분명 영화는 41년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왠지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상처럼 여겨졌다. 도대체 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은 인터뷰에서 “서로 시기하고 충성 경쟁하고 1인자·2인자 간 갈등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왜 그리 몰입해 영화를 보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넓게 확장하면 우리 사는 인간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면서도 깊게 그려냈기 때문에 영화 예술이 주는 감성의 충만을 충분히 느꼈던 것이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아 좋은 영화라고 기억하는 것 같다. 혼신을 다해 감동의 연기를 펼쳐준 배우 및 감독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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