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비 개인 휴일 아침, 하늘은 오랜만에 말간 민낯을 드러내고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은 나무와 꽃들은 싱그러운 신록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상쾌한 초록의 향이 묻어난다. 찬물에 가벼운 세안만 하고 걸어서 오 분 거리인 숲으로 향한다.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여유롭게 즐기는 아침 산책. 몸도 마음도 초록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한 시간여의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는데 삐죽 양말을 뚫고나온 엄지발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를 닮아 유난히 큰 엄지발가락이 멀쩡한 새 양말에 자꾸만 구멍을 만든다. 구멍을 발견하면 양말을 뒤집고 야구공을 집어넣은 후 서툰 바느질로 구멍을 메우고 으레 발톱을 깎곤 하는데, 그때마다 불쑥 그로테스크한 발가락 이미지가 하나가 겹쳐진다. 60여 년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내 어머니의 발가락이다.
 

십여 년 전, 허리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보름 정도 우리 집에 머물러 계셨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어머니와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길어진 어머니의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엄니, 손톱이 너무 기네요. 제가 깎아드릴 게요.” 손톱깎이를 꺼내들고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냅둬라, 난중에 내가 깎을란다.”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시던 어머니는 이내 못이기는 척 내게 손을 맡기셨다. 거칠거칠하고 여기저기 거무튀튀한 검버섯이 올라와 있는 어머니의 손…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린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손톱을 깎아드린 기억이 없었다. ‘참 무심한 아들이었구나!’ 하는 회한이 밀려왔다. 

 

울컥해진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얼른 말을 돌렸다. “우리 엄니 손톱이 참 이쁘시네.” 그 말에 어머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금세 칭찬으로 돌려주셨다. “오매~, 작년 시한에 이쁜 사람들 다 얼어 죽어부렀다냐? 이 손톱이 머시 이빼야, 니가 가시내보다 이삐게 손톱을 깎어준께 이뻬 보이제.” 아들이 처음 깎아주는 손톱이니 특별한 마음이셨을 테고, 반달 모양으로 공들여 깎은 손톱 모양도 내심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나는 발톱도 깎아드리겠다고 양말을 끌어당겼다. 어머니는 부끄러운 듯 발을 빼시며 정색을 했다. “아따, 됐다마다. 발톱은 내가 깎을랑께 냅둬야.” 하지만 어머니의 말보다 내 손이 더 빨랐다. 이미 양말은 벗겨지고 어머니의 발모양이 드러났다. 당연히 갈라지고 쭈글쭈글하리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발은 상상보다 기괴한 모양이었다. 고목의 뿌리처럼 불규칙하게 휘어지고 마디마디는 옹이처럼 솟아 있었다. 특히 엄지발톱은 다른 발톱의 세 배 정도 부풀어 올라서 손톱깎이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하긴, 평생을 쉬지 않고 논일에 밭일에, 겨울이면 갯일까지 해댔으니 멀쩡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인터넷에 떠돌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나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보다 험한 어머니의 발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궁리 끝에 대야에 물을 떠와서 한참동안 발을 담그고 물에 불린 후에 가위와 칼을 동원해서 겨우 발톱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톱 손질에 족욕 서비스까지 받고나니 어머니도 기분이 좋아지신 모양이었다. “아따, 개안하고 좋다야. 그 무선 발톱을 야물딱지게 잘 깎었다잉.” 어머니의 흐뭇한 미소와 그 음성이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앞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되고 말았다.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 새끼들 손발톱은 놓치지 않고 때맞춰 깎아주면서도 부모님께는 내내 무심한 철부지 아들이었을 뿐이다.

 

요즘은 가끔 처가에 갈 때마다 장모님의 손발톱을 깎아드리려고 기회를 엿본다. 장모님의 손발에도 내 어머니 못지않은 질곡의 삶이 기괴한 모양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마디마디를 어루만지며 깎고 다듬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고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그렇게 발톱을 깎으며 간절히 기도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기를, 부디 더 많은 감사의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를!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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