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가 죽은 후 1년 동안에 4명의 황제가 바뀌었다.”서기 69년, 황제 자리를 둘러싸고 4명이나 황제가 바뀌는 혼란이 일어난 까닭에 ‘4황제의 해’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원수정 체제는 공화정 말기처럼 위기가 닥쳤다. 황제의 승계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타키투스는 『역사』에서 4명의 황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서기 68년, 네로가 자결한 후 갈바 황제가 추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전의 시작이었다. 갈바는 유서 깊은 원로원 가문 출신이었으나 통치 역량이 부족했다. 군부의 충성을 확보하지 못한 황제는 몇
네로 황제의 운명을 바꿀 치명적인 사고가 터졌다. 서기 64년 7월, 로마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대경기장 관중석 밑의 상가에서 불이 발화되었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불길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로마의 14개 행정구 가운데 3개 행정구가 모두 타버렸다. 7개 행정구는 절반 정도 타버리는 피해가 생겼다. 네로는 피해 복구를 위해 이재민의 주택 재건사업을 발 빠르게 추진했다. 또한, 자신의 궁전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 황금 궁전)’라고 명명하고 재건 프로젝트를 펼쳐나갔다. 이게 문제였다. 궁전 재건의
“로마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누구일까?”바로 로마제국 5대 황제 ‘네로(재위 서기 54~68)다. 카이사르는 몰라도 네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네로 황제는 “인류의 파괴자”, “세상의 독”, "최악의 폭군"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으나 재위 초반에는 선정을 베풀며 인기를 누렸다. 서기 54년 황제에 즉위했을 때 네로의 나이는 16세에 불과했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임 클라우디우스 황제 체제에서 해방노예들이 설치는 모습에 신물을 느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