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황감사 / 만약 나라면…

 

〉 친구 〈 

“정말 미안하다. 
         너를 아프게 둔 채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도할게.”

  〉 박 수필가 〈

"나 혼자만 피해자인 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 스스로를 자책했을 친구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움과 원망이 녹으면서 진정한 화해를 하고 싶었다. 눈곱만큼의 변명도 않은 채, 내 몸의 더러운 오물까지 받아준 소중한 친구를 하마터면 잃을 뻔 했다."

 

 “너랑 함께 도전하고 싶어!”


 캐나다에 이민 간 친구가 고국인 대한민국 국토종주를 비롯해 한반도 자전거 종주코스들을 섭렵하는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친구를 찾아와 함께 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행복한 여행을 꿈꾸며 떠났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부주의로 인해 ‘뿌드득~’ 허리뼈 부러지는 소리와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된 체험한 박온화 전 교장.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2년전 사고 당시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감사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고통스런 몸과 아픈 마음을 극복하면서 친구를 향한 더 깊어진 박 교장의 마음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편집자 주>

 

눈부신 햇살에 잠시 통증을 잊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아픔을 준 친구가 들어선다. 
동공이 커지면서 지진이 일듯 온몸이 뒤틀린다. 원망으로 쏘아보는 내 눈빛에 주춤하더니, 다가와 손을 잡는다.
“정말 미안하다. 너를 아프게 둔 채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도할게.”
엿새 동안 나를 위해 간병하던 친구가 아픈 발걸음을 돌리는 모양이다.
고교 동창으로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사는 친구는 자전거 마니아이다. 봄이면 철새처럼 날아와 남편, 지인과 함께 자전거여행을 즐기고 돌아간다.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국토종주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자전거 종주코스들을 거의 섭렵했다.
이번에 혼자 온 친구는 그랜드슬램의 하나 남은 ‘충북 오천자전거길 종주’에 나의 동행을 원했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쉬어야 했다. 조심해 타자며 친구는 재차 요청을 했다. 잠시 갈등했지만,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동참하기로 했다.
1박2일 자전거여행의 첫날, 5월 눈부신 햇살 속 동그라미 행진은 순조로웠다. 옥수수 밭 푸른 물결, 올갱이마을을 지날 땐 아까시 향기가 진동을 했다.
뭉게구름과 바람의 응원을 받으며, 농로와 하천, 제방 길을 달렸다. 쉼터에서 나란히 헬멧을 벗고 누우니, 들새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흐르는 강물 따라 우정도 흘러갔다. 
둘째 날 오후, 마지막 인증도장 하나만을 남겨둔 청주 무심천 인증부스에서였다.
친구의 모습을 담으려 휴대폰을 들고 쪼그려 앉았다. 저만치서 친구가 천천히 자전거를 굴리며 온다. 벌써 그랜드슬램 완성의 메달을 목에 건 듯 미소가 가득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앗, 어쩐 일일까? 환하던 햇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자전거가 내 발에 닿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나를 덮치며 엎어졌다.
친구의 몸과 자전거, 배낭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채, 뒤로 나가떨어지며 뿌드득 뿌드득 허리뼈 부러지는 소리. 하늘이 무너졌다.


20년 넘게 자전거 잘 타는 친구, 왜 서지를 못했을까?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탄탄하던 척추가 한순간에 부러지다니!
자신을 위해주었건만,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망가뜨린 친구. 뒤집혀진 벌레처럼 버둥거리며 밤낮없이 오열했다.
놀라서 달려온 아들과 언니는 번번이 오지랖 때문에 고생한다며, 핀잔 섞인 걱정들을 한다.
정말 남을 위한다는 건, 고통을 수반하는 일인가?


친구는 출국을 미루고 간병을 한다. 싫다고, 내 몸에 손도 대지 말라고 완강히 뿌리치는 나를 아랑곳 않는다. 지극정성으로 음식과 약을 먹여주고, 땀과 몸 위아래 곳곳의 오물을 닦아준다.
죄인처럼 곁에서 어깨도 펴지 못하고, 통절히 토해내는 울음과 몸부림을 받아넸다. 밑의 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소리 없이 지쳐가는 친구. 
미안하고 안쓰럽기는 하지만, 일어서지도 돌아눕지도 못하는 나는 지금 생각조차 하기 싫은 장애인이 아닌가.
많은 걸 잃어버린 상실의 고통으로 친구를 얼음 보듯 냉랭하게 대했다.
간병을 끝내고 돌아가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회복이 되어가는 즈음, 친구에게 물었다. 그때 왜 자전거를 멈추지 못했느냐고. 처음엔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사진을 잘 찍히고 싶었던 생각밖엔 없었다고 한다. 
‘아! 그래, 사진만 생각하다가 아주 가까이 다가온 걸 미처 몰랐구나!’ 


친구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았다.
만일 내가 실수로 친구를 다치게 했다면, 벼랑 끝에서 몰아치는 비난과 죄책감을 어떻게 견뎠을까.
나 혼자만 피해자인 줄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 스스로를 자책했을 친구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움과 원망이 녹으면서 진정한 화해를 하고 싶었다.
눈곱만큼의 변명도 않은 채, 내 몸의 더러운 오물까지 받아준 소중한 친구를 하마터면 잃을 뻔 했다.


동창카페에 자전거여행 사고 이야기를 남기고, 먼저 사과했다. 친구는 ‘너무 미안하다, 정말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고마운 댓글들이 쏟아져 마음의 상처는 씻겨 내려갔다.


삶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않을까. 내 아픔과 억울함에만 연연해 가시방석에 앉은 친구를 외면했다면, 삶이 햇살처럼 눈부시다 말할 수 있을까.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아픈 손가락임을, 서로 보듬어주어야 할 대상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귀중한 존재임을 통감하게 되었다.
절절한 감사가 흘러넘쳤다. 
만들어진 조화(造花)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모진 풍파를 이기고 독소를 걸러내는 생생한 체험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그윽한 향기가 피어나리라. 오해를 벗겨내면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자석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으리라.
흐르는 강물 따라 우정도 쉼 없이 흘러간다. 허리 똑바로 펴고 힘차게 걷는 모습, 동그라미 행진으로 활기차게 그려나가는 세상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친구야, 네가 있어 고맙다.
 

글=박온화 수필가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 인증도장.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 인증도장.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 인증도장.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 인증도장.
‘대한민국 자전거 그랜드슬램’ 인증도장.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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