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찾은 1감사 / 성공의 공식 포뮬러

성공의 공식 포뮬러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한국경제신문

 

아인슈타인이 헝클어진 백발의 천재로 사랑을 받기 전, 대부분의 미국인은 그를 오만한 엘리트주의자로 여겼다. 그는 1919년이 되어서야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한 그의 첫 논문이 나오고 14년 후였다. 그때 영국 학자들은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지 않고 굽어서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입증하는 개가였고, 영국 언론은 이 발견에 흥분했다. 미국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상대성 이론에 할애한 <뉴욕 타임스>의 평론 여섯 편에는 경외심에 의구심이 뒤섞여 있었고 심지어 적개심마저 보였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언제 천재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을까? 알고 보니 그가 유명해진 정확한 날짜가 있었다. 1921년 4월 3일, 그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날이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논란의 대상인 이 물리학자를 인터뷰 하기 위해 기자들을 그가 도착할 맨해튼 남쪽 배터리 파크로 보냈다. 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거의 2만 여명의 군중이 모여 “목이 터져라 환호하고 있었다.” 바랜 회색 비옷을 입고 담배 파이프를 뻐끔거리며 손에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꽉 쥔 아인슈타인은 배에서 내려 일행과 함께  배에서 내려 무개차를 타고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를 돌며 카퍼레이드를 했다. 그들이 탄 무개차는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세컨드 애비뉴로 진입했고, 여기서부터 업타운까지 환영 인파 수천 명이 손과 손수건을 흔들며 방문객들을 환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의 자격으로 뉴욕에 온 게 아니었다. 그는 국제시온주의자기구 회장인 차임 와이즈먼을 수행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왔을 뿐이다. 와이즈먼과 그의 수행단은 미국을 방문해 당시 팔레스타인이었던 곳에 새로운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방안을 알리려고 했다. 이는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절실히 마음에 와닿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떼로 몰려나가 시온주의의 영웅을 맞이했다. 그와 동행한  상대성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그이가 상대성 이론에 대해 여러번 설명해줬지만 여전히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이 얻은 전무후무한 명성은 우발적 사건 덕분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사연은 이 책에서 논한 성공의 제1공식부터 제5 공식의 법칙까지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보여준다. 

1감사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얻은 전무후무한 명성이 그가 이룬 과학적 업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발적인 사건 덕분이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성공이라는 것이 어느 한 가지 요소로만 채워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성공의 공식, 포뮬러 법칙 다섯 가지를 알게 해준 저자와 번역자에게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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