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

# 어린 시절의 추억

여섯살 때였다던가? 동네 어른 들 노는 데 따라가서 ㅂ망 가운데 놓인 막걸리 대야에서 막걸리를 떠먹다 취했단다. 나도 기억이 난다. 그런 모습조차도 예뻐서 놔두셨을까? 어른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 있다.

어머니가 바지락 캐던 날, 나는 바다에 들어갔다가 꽃게에 물려 점점 깊은 바다로 울면서 끌려갔다. 뒤늦게 어머니가 보시고 놀라서 허겁지겁 뛰어오시고 어른들을 나에게 보내 꽃게를 보내주었다. 그때의 당황하신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비금 이모님 댁에 갈 때면 사복을 입고 배를 탔다가 비금에 내린 다음에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초등학생인 척해서 반액 할인으로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는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제 생각하니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어머니에 대한 1감사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늘 일손을 놓지 않으셨다. . 그렇게 바쁜 중에도 나와 함께 해 주셨던 많은 일들을 떠 올리면 감동할 수 밖에 없다.

연 만드는 종이. 대나무 구하러 다니던 일,
목수에게 부탁해서 최고의 연자세를 만들어 주신 일,
구호물자 스웨터에서 연실을 뽑아주고 그 연실에 유리가루를 먹여 연싸움을 도와 주시던 일,
바지락. 대합. 맛조개 캐러 가던 일,
눈썰매 만들어서 밀어 주시던 일,
동네에서 소 잡는 날은 오줌통 구해줘서 공놀이 하게 한 일,
제기 만드는 엽전. 습자지 구해주는 등등

대신 대부분 친구들이 하던 땔감나무 하는 일은 한 번도 시키지 않으셨다.

방학이면 멀리 사는 큰이모. 작은이모. 외가 등에 보내 주셨다. 늘 혼자였던 나에게는 사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했다.
사촌이라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는데 이 때의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원려를 헤아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천지세무법인 내 북까페에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 박점식 회장.
천지세무법인 내 북까페에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 박점식 회장.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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